[인터뷰] 13. 이경희 작가

<연재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Kassel) 및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세계 주요 예술 행사를 개최하면서 자타공인 국제 사회에서 주요 예술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 및 예술계 종사자들의 이목이 쏠려 집중되어 온 베를린. 독일 안에서도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렴한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집합이라는 이유에서일까? 베를린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이다. 미술계의 핫 플레이스인 이곳에서 필자는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함께 나눌 기회를 연재 인터뷰를 통해서 마련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열세 번째로 작년 여름 베를린에 있는 ZK/U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이던 이경희 작가를 만나보았다. 그간의 작업에서 작가는 ‘기억’이라는 큰 축을 중심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과 일어나고 있는 상황을 다양한 매체를 이용해서 표현하고 해석해왔다.

 2003년 2월 18일과 2014년 4월 16일의 사고를 간접적으로 경험한 작가는 최근 ‘사회적 재난’과 이를 겪은 사람들의 ‘기억’에 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대구 지하철 참사 사고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이곳에 살기 위하여> 작업을 중심으로 그동안의 작업을 두루 살펴보고, ‘기억’과 ‘사회적 재난’이라는 작업의 모티브(motive)에 관해서 이야기 나눠보았다.

이경희 작가 (사진 제공: 이경희)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레지던시 프로그램 일정이 짧아서 많이 바쁘실 텐데,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에서는 그간 해오신 작업과 베를린에서의 경험에 관해서 이야기 나눠보고자 합니다. 우선, 한국에서 주로 작업을 이어오시다가 베를린으로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경희: 안녕하세요. 사실 마냥 짧은 일정은 아니지만,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날이 다가오다 보니 더 오래 있지 못한 게 아쉽네요. 그렇지만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그간의 작업을 다시 돌이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뒤늦게 대학원 생활을 하며 서울 동작구에 있는 작업실에서 작업을 이어왔어요. 이후 작업을 꾸준히 해오다가 좋은 기회가 주어져 대구에 있는 가창 창작 스튜디오의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참여했었어요. 대구에서 일 년 간 지내면서 작업을 잘 마치고, 서울로 올라와서 새 작업, 작업실 유지, 듀오(duo) 활동, 타 레지던시 지원 등. 앞날에 관해서 다양한 고민을 하고 있었어요. 이런저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인천문화재단에서 독일 베를린의 ZK/U 레지던시와 교환 프로그램을 진행한다는 것을 알게 됐고, 제가 인천에서 학교를 나왔기에 조건이 충족되어 공모가 개시되자마자 지원했어요. 감사하게도 그간의 작업과 장래의 가능성을 좋게 봐주셨는지, 베를린에서 짧지만 3개월 동안 작업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이: 베를린에 오시기 전에 대구에서 지내시면서 <이곳에 살기 위하여>라는 제목의 작업을 하셨는데, 어떤 작업인지 궁금합니다. 

이경희: 처음에 대구에 내려갔을 때, 대구의 장소적 특성보다는 대구에서 일어난 일들과 이와 연관된 사람들의 기억에 관심이 있었어요. 작업을 준비하며 대구에서 생활하고, 대구 지하철 참사가 일어난 장소를 자주 지나면서 이에 관한 작업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사고가 발생했었던 당시에 저는 다른 장소와 다른 위치에서 단순 화재에서 참사로 번져가는 과정을 지켜봤었는데, 뉴스를 통해서 들려오는 끔찍한 소식을 힘들게 받아들였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었어요. 사고의 전후 풍경을 자세히 살펴보고 저만의 은유적 방법으로 다시금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룬 특집  MBC 뉴스데스크

대구에 내려가서 처음에는 사고와 관련된 자료를 찾는 것에 집중했어요. 사고가 왜 일어났는지, 왜 예방하지 못했는지, 그리고 희생자와 그 유가족을 위한 처우는 어땠는지 등. 사고가 일어나기 전과 발생한 이후의 이야기를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할 계획이었어요. 자료를 찾고, 수집하던 중에 단순히 객관적 자료만으로는 진정성이 담긴 작업을 하기가 어려울 것 같았어요. 어렵겠지만, 대구 지하철 참사로 희생된 분들의 유가족분을 만나서 직접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굉장히 조심스럽게 유가족분들에게 연락을 드렸고, 4월 즈음에 유가족 세 분과 인터뷰를 했어요. 인터뷰의 내용이 작업에 직접 나오지는 않지만, 인터뷰를 통해서 작업의 전체적인 방향도 확실하게 잡혔고, 저 자신도 지난 사고에 관해서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됐어요.

또한, 인터뷰를 계기로 만나 뵌 유가족분들께서 지하철역 안에 있는 사고 장소와 이후 건립된 <대구 시민 안전 테마파크>(각주 1, 1.1)를 방문해보기를 권하셨어요. 인터뷰 이후에 말씀해주신 곳을 방문해보고, 대구 지역의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생존자, 희생자, 유가족 그리고 지하철 참사를 기억하는 대구 시민들이 어떤 풍경을 보고 있고, 어떤 환경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살펴봤어요. 그리고 목격한 것을 사진과 영상으로 기록해서 <이곳에 살기 위하여> 작업에 담았어요.

<대구 시민 안전 테마파크> 홈페이지

이: 유가족분들을 만나 뵙고 인터뷰를 진행하셨다고 하셨는데, 유가족분들이 쉽지 않은 결정을 내리셨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인터뷰의 진행 과정에 대해서 말씀해주시자면? 

이경희: 저의 인터뷰 때문에 유가족분들이 지난 일을 다시금 떠올리셔야 했을 것 같아서 죄송스러운 마음이 많았어요. 그런데도 작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인터뷰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단순한 객관적 자료만으로 작업을 구성하면, 제가 이야기하고 싶은 내용이 관객들에게 잘 전달되기 힘들 것 같았거든요. 유가족분들의 이야기를 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접촉 방법을 고민하던 중에 유가족분들이 만드신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각주 2) 홈페이지를 발견했고, 사이트에 적혀있는 공식 이메일로 인터뷰 요청을 드렸어요.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 홈페이지

답장은 한참 뒤에 왔어요. ‘저에게 왜 우리를 만나려고 하는지?’ 그리고 ‘만나서 무엇을 할 것인지?’에 관해서 충분히 설명해주시길 원하셨어요. 당연히 충분히 설명해 드려야 하는 부분이기에 제가 구상하고 있는 작업과 작업의 방향에 관해서 설명해 드렸고, 감사하게도 제 작업을 이해해주셨어요. 그리곤 얼마 지나지 않아 인터뷰 약속을 잡았고, 이야기를 나눴어요.

 인터뷰하기 직전까지도 내가 인터뷰를 진행하는 게 맞는 것인지, 혹시나 그분들의 상처를 더욱 아프게 하는 건 아닐지 많이 걱정했어요. 걱정을 가득 안고 인터뷰를 진행하는데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유가족분들이 오히려 담담하게 이야기를 이어가시기에 놀랐어요.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기 전에, 저에게 이런 내용의 작업을 하게 되면 예상치 못한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며 걱정스럽게 말씀해주시는데 그런 모습을 보면서 13년이 넘는 세월 동안 풀리지 않는 문제들을 풀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하셨을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불이익과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셨을지가 고스란히 느껴져서 너무 마음 아팠어요.

 유가족분들은 개인의 감정을 드러내시기보다는 담담하게 사고 당시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말씀해주셨어요. 또한, 대구 지하철 참사와 같은 사고가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 개선되어야 할 점과 안전 문제에 관한 국민적 관심 그리고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셨어요.

 인터뷰 내내 담담하게 이야기하시던 한 유가족분께서 돌아가서 살펴보라며 2014년도에 있었던 대구 지하철 참사 추모전 도록을 주셨는데요. 돌아가는 길에 무심히 도록을 펼쳐서 보는데, 몇 편의 시가 끼워져 있더라고요. 알고 보니 도록을 주셨던 분이 사고로 희생된 딸을 생각하면서 직접 적으신 시였어요. 시를 읽으며 돌아가는 길 내내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나요.

이: 다시금 그 날의 기억을 떠올려야 했던 유가족분들도 힘들었겠지만, 인터뷰를 진행하셨던 작가님도 매우 힘드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결과적으로 작업을 잘 마무리하셨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작업을 마무리하셨는지? 

이경희: 유가족분들의 고통은 감히 상상할 수 없죠. 이와 비교하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겠지만, 저 역시 유가족분들과의 만남에서 이야기 나눴던 내용의 여파가 너무나 커서 한동안 작업을 못 했어요. 사고 이후 유가족의 삶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고 나니까 작업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요. 더욱이 작업을 통해서 사회적 재난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이 타개하기 힘든 현실에 맞서 싸워온 유가족들에게 미약하나 도움이 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어요.

 하지만 은유적 언어로 드러나지 않은 현실의 이면을 말하고 질문을 던지는 것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어요. 그리고 제 작업을 보는 사람들이 까맣게 잊고 지냈을 지난 사고와 사회적 재난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돌이켜 볼 수 있을 거라는 작은 희망을 기대하며 작업을 이어갔고 마무리했어요.

이: 이번에는 작업의 시각적 내용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는 영상과 설치가 혼합된 작업입니다. 먼저 영상에서는 물과 불이 등장하고, 한 여자가 책을 들고 있는 모습이 나오면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는데요. 이렇듯 영상 작업 안에서 보이는 세부적인 요소에 관해서 설명해주시자면? 

이경희: 사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작업의 시작에는 대구에서 일어난 일과 이에 관계된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관심뿐만이 아니라, 세월호 사고로부터 왔던 영향도 있어요. 대구에 내려가면서 13년 전의 대구 지하철 참사를 떠올렸고, 이와 동시에 13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세월호 사고’라는 사회적 재난의 상황을 떠올렸어요. 마치 우리가 불과 물 사이에서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어요. ‘반복되는 사회적 재난의 상황 속에서 무기력하게 갇혀있기만 할 것인가?, 그렇게 살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하지?’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어요.

<이곳에 살기 위하여>, 비디오 스틸

 작업 속에서 이러한 질문들을 저만의 언어로 던지고 싶었기에 작업 과정에서 글을 많이 읽고 쓰려고 부단히 노력했어요. 그러던 중에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Pour vivre ici (이곳에 살기 위하여)’라는 시를 접했어요. 우연히 접한 이 시에서는 불과 물 사이에서 존재하는 삶에 관해서 노래하고 있는데, 작업을 구상하면서 떠올렸던 대구 지하철 참사(불), 세월호 사고(물) 그리고 그 사이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과 연결할 수 있었어요.

 영상 속에서 시를 읽는 사람은 여성이지만, 시를 읽어 내려가는 목소리의 주인공은 정체가 불분명한 남성인데요. 시를 낭독하는 여인의 모습 위에 남성의 목소리를 겹침으로 이 작업에서 말하는 사회적 재난과 이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기억들은 너의 기억이 될 수도 있고 나의 기억일 수도 있고, 또 다른 이의 기억일 수도 있다는 것을 표현했어요.

하늘이 나를 버려 불을 피웠네
친구가 되기 위한 불
겨울밤을 지내기 위한 불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한 불을

빛이 나에게 베풀어 준 모든 것을 나는 그 불에 바쳤네
큰 숲과 작은 숲, 보리밭과 포도밭
새집과 새들, 집과 열쇠
벌레, 꽃, 모피, 향연들을.

나는 불꽃이 파닥거리며 튀는 소리만으로
그 불꽃이 타오르는 열기의 냄새만으로 살았네
나는 흐르지 않는 물속에 침몰하는 선박과 같았으니까.
나는 죽은 사람처럼 물 밖에는 없었으니까.

– 폴 엘뤼아르(Paul Eluard)
‘이곳에 살기 위하여(Pour Vivre Ici)’ 중

이: 앞서 이야기한 영상 작업을 살펴보기 위해서는 설치 구조물의 내부로 들어가야 하는데, 작업의 맥락을 파악하기 위해 의도된 부분인가요? 

이경희: 약 5m 길이의 구조물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너비가 좁아지고 천장이 낮아지면서 관객의 웅크린 자세를 자연스럽게 의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좁고 낮은 통로의 끝에서 영상 작업이 상영되는데, 이는 관객들에게 물리적으로 지하철과 지하도를 연상시킴으로써 영상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더욱 와 닿을 수 있도록 의도한 부분입니다.

 

<이곳에 살기 위하여>, 설치 외관

<이곳에 살기 위하여>, 설치 내부

<이곳에 살기 위하여>, 설치 내부 및 작업 영상


힘겨운 과정을 통해서 나온 <이곳에 살기 위하여작업을  관객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이경희: 제 작업을 보시고 아픈 기억을 다시 재생시켜서 불편해하시는 분들도 계셨고, 대구 지하철 참사와 관련된 작업이라는 것을 인지하시고 더욱 주의 깊게 살펴보신 분들도 계셨어요. 그렇지만 무덤덤하게 살펴보시는 관객분들도 많았어요. 작업을 살펴보고 느끼는 감정과 반응은 개인의 영역이기에 제가 평가하거나 섣불리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하지만 작업을 살펴보신 관객분들과 이야기 나누면서, 많은 분이 13년이라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단순히 역사 속에서 일어났던 하나의 사건으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사실 저도 성수대교 붕괴,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재난을 단순히 많은 희생자가 난 일로만 인식했어요. 하지만 최근의 세월호 사고를 보면서 예전부터 지속해서 반복되는 일련의 일들이 인생에서 단순히 일어날 법한 것이 아니라 끔찍한 사회적 재난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어요. 그 이후에 작업을 통해서 이를 이야기하고 공론화를 위해 노력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오늘날까지 이와 관련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이곳에 살기 위하여>, 비디오 스틸

<이곳에 살기 위하여>, 비디오 스틸

이: <이곳에 살기 위하여> 작업과 더불어 대구 가창 창작 스튜디오 프로그램의 결과전으로 <경희 여관>이라는 작업을 선보이셨는데, 이 작업은 어떤 내용을 담고 있나요? 

이경희: <경희 여관> 작업은 저의 환상을 보여주고 싶었던 욕구로부터 시작된 작업이에요. 스튜디오 주변에 있는 유휴공간을 여관으로 꾸몄어요. 여관이라는 공간이 사람들이 계속해서 머무는 주거의 공간의 성격을 지니고 있지 않고, 잠시 머물다 가는 임시적인 공간이잖아요. 다양한 사람들이 여관이라는 공간에 잠시 머무르면서 그들의 기억과 이야기가 점차 쌓여간다고 생각했어요. 다양한 기억이 쌓이다 못해 서로 뒤섞여 존재하기에, 제가 이 공간에 가면 혹은 다른 사람이 이 공간에 가면 또 다른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다른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저의 욕망이 크게 드러났던 작업이에요.

<경희 여관>, 외부 모습

<경희 여관>, 작업 텍스트

이: 2015년에는 중국 항저우에 있는 중국 미술학원 국가 대학 과학기술원에서도 잠시 머무르셨는데, 항저우에 계시면서 진행한 작업이 궁금합니다. 

이경희: 항저우에 3개월 정도 머무르면서 <인수에게 – 你>라는 제목의 작업을 진행했어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업 중 하나인데요. 대구에서는 진중하게 다뤄야 하는 주제의 작업에 몰입해있었지만, 항저우에서는 비교적 무게감이 적은 내용의 작업을 하고 싶었어요. 그리고 항저우라는 새로운 환경으로 들어갔기에 기존의 작업을 그대로 가져가고 싶지 않았어요. 새로운 작업을 하고 싶었죠.

 <인수에게 – 你> 작업은 한 명의 화자가 인수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 내용의 작업이에요. 화자가 인수라는 사람에게 편지를 쓰는데, 기억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현재 보고 있는 것에 관해서 이야기하기도 하고, 꿈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어요. 즉,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관해서 화자가 인수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거죠. 이는 제가 작가로서 꿈꾸고 있는 이상향에 가까워요. 작업 속에서 화자의 펜을 빌려서 인수에게 편지를 쓰면서 제가 그리는 작가의 이상향도 함께 담았어요.

<인수에게 – 你>, 비디오 스틸

이: ‘인수’라는 인물은 가상의 인물인가요? 

이경희: ‘인수’는 가상의 인물이 아니에요. 실제로 존재하는 인물이죠. 하지만 작업에서 인수가 누구인지, 화자가 누구인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싶지 않았어요. 작업에서 드러나는 인물보다는 관객들이 편지의 내용에서 드러나는 상황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랐어요. 따라서 인물의 정체는 작업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는 않아요.

이: <인수에게 – 你> 작업의 내용에서 과거, 현재,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것들이 한편으로는 작가로서 바라는 이상향이라고도 언급하셨습니다. 작가로서 바라는 이상향에 관해서 말씀해주시자면? 

이경희: 사람들의 기억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과거에만 집중하다 보면, 작업에서 현실의 흐름을 반영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냐며 걱정을 해주시는 분들도 계시는데 기억에 관해서 주로 이야기하지만, 현재 제가 보는 것을 온전히 소화해내고, 언젠가는 모든 사람의 한 조각이 되고 싶은 미래 지향적 소망이 있어요. 이런 부분이 작업하면서 작가로서 희망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이: 이번에는 작가님의 첫 작업이기도 한 <종암동 프로젝트>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눠볼까 합니다. 첫 번째 작업이다 보니 그 애정이 남다를 것 같은데요. 어떤 내용을 담은 작업인지 궁금합니다. 

이경희: 네. 제가 처음으로 작업한 게 <종암동 프로젝트> 예요. 본격적으로 작업이라는 것을 하기 전에는 그저 ‘언젠가는 한 번 해봐야지’라는 흥미만 가지고 있었어요. 단순히 흥미만 지니고 있다가, 대학원에서 청강했던 커뮤니티 형식의 수업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작업을 시작했어요.

 학생과 강사분이 함께 수업 내내 서로 이야기를 하는 형식이었어요. 수업 과정에서 제가 계속해서 돌이켜 생각하는 나의 기억에 관해서 이야기하는데 강사분이 기억을 돌이켜 곱씹기만 하지 말고 어떤 형식이 되든 간에 표현하기를 권하셨어요. 사실 그 말을 듣기 전까지 머릿속에서 부유하던 기억을 작업으로 표현한다는 생각을 못하고 있었어요. 추상적 형태로 맴돌던 것들이 시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기억에 관해서 표현하는 것이 작업의 시작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종암동 프로젝트>, 비디오 스틸

 돌이켜 생각해보던 저에게는 여러 가지 인상적인 경험들이 있었지만, 그중에서도 할머니에 관한 기억과 이야기를 작업 안에서 표현해보고 싶었어요. 어릴 적 제주도에서 나고 자랐는데, 어느 날 갑자기 할머니께서 제주도에 내려오셔서 저를 데리고 서울 성북구 종암동으로 가셔서 한동안 그곳에서 살았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한테서 들었어요. 당시에 관한 저의 기억은 없다 싶을 정도로 매우 희미했지만, 이 기억을 완성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는 어릴 적 할머니와 함께 종암동에서 살았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서, 무작정 종암동으로 갔어요. 그리고는 종암동에 있는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주변을 걸어 다니면서 풍경을 살펴보기도 했어요. 그러다가 종암동에서 마주하는 희미하지만 익숙한 풍경을 드로잉(drawing)하기 시작했고, 글로 상황과 감정을 기록했어요. 또한, 작업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할머니의 유품과 사진을 통해서 그동안 알지 못했던 할머니의 사연을 접하기도 했어요. 이런 경험들을 종합해서 어릴 적 저의 시선으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내용의 짧은 시와 노랫말을 적었어요.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사진 속에 할머니가 입으셨던 옷을 입고 종암동에서 흔적이 남아있을 법한 곳을 다니면서 퍼포먼스를 했어요.

<종암동 프로젝트>, 비디오 스틸

이: 그간의 작업에서 ‘기억’이라는 모티브를 전반적으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또한,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면서 ‘기억’이라는 모티브가 점차 개인의 범주에서 타인의 범주까지 확장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경희: 앞서 이야기한 <종암동 프로젝트>를 시작점으로 ‘기억’을 더듬어보다가, 작업을 계속 진행하면서 점차 타인의 기억으로까지 자연스럽게 확장된 것 같아요. 더 많은 사람의 ‘기억’과 ‘이야기’에 관심이 생기고, 귀를 기울여 듣고 싶어 지는 것은 작업의 과정을 거치면서 발생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제가 개인적으로 바라던 것이기도 하고요. 개인과 타인의 범주를 아울러서 앞으로도 ‘기억’이라는 모티브를 중심으로 작업을 계속 이어나갈 것 같아요.

이: 2015년 대구에서 작업하신 <이곳에 살기 위하여>에서는 특히나 ‘기억’이라는 모티브가 ‘사회적 재난’과 맞물리면서 새로운 맥락을 선보입니다. 모티브의 범주가 확장하면서 변화와 발전을 겪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이경희: 작업을 처음 시작할 당시에는 개인과 타인의 ‘기억’ 자체에 초점을 맞췄지만, <이곳에 살기 위하여> 작업 과정에서 ‘세월호 사고’와’ 대구 지하철 참사’를 다시금 떠올리면서 ‘사회적 재난’의 직·간접적인 경험이 쌓인 기억에 관심이 갔어요. 그리고 이러한 기억들이 쌓인 사람들에게 일어나는 삶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지면서 작업의 범위가 확장됐어요. 변화와 발전을 의도한 건 아니지만, ‘사회적 재난’의 현실과 ‘기억’이라는 작업적 모티브가 부딪히면서 발생한 하나의 현상이라고 생각해요. 오늘날에는 이러한 현상을 작업 속에서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 ‘사회적 재난과 개인 혹은 타인의 기억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 이로 인해 변화하는 것은 무엇인지?’를 이야기하고 있어요.

이: 짧은 기간이지만 베를린에서 지내시면서 오픈 하우스(OPEN HOUSE)와 토크 프로그램(KUNST TALK)에도 참여하시는 등. 다양한 활동을 하셨는데요. 그간의 경험을 비추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베를린은 어떤 곳인지가 궁금합니다. 

이경희: 베를린은 모든 곳으로 뚫린 혹은 모든 부분이 연결된 통로 같아요. 제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길이 존재하고, 그 길 위에 놓인 다양한 요소들이 예상하지 못한 새로움을 만드는 곳이 베를린이라고 생각해요. 또한, 예술계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작가의 작업에 관심이 많은 것 같아요.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해석하려고 하면서도, 작가의 의도와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자주 목격했어요.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저 또한 작업에 관해서 보다 상세하게 설명하고, 함께 의견을 나누기 위해서 노력했어요.

ZK/U 레지던시 오픈하우스(OPEN HAUS)에서 작업을 선보인 이경희 작가 (사진 제공: 이경희)

프로그램에 참여한 이경희 작가 (사진 제공: KUNST TALK)

프로그램에서 작업 설명 중인 이경희 작가 (사진 제공: KUNST TALK)

이: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이경희: 베를린에서의 짧았던 시간과 추억을 잘 정리하고, 한국으로 들어가서 작업을 이어나갈 생각이에요. 단체전이 잡혀있어서 아무래도 단체전에서 선보일 작업을 위해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될 것 같네요. 그리고 다른 작가분과 함께 팀으로 활동하려고 준비 중이에요. 아직 어떤 활동을 함께 할 수 있을지는 깊이 이야기 나눠봐야겠지만, 함께 의견을 나누면서 작업하는 것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요.

이: 앞으로도 흔들림 없이 작업을 이어나가시길 바랍니다. 오늘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경희: 응원의 말씀 감사합니다.


<각주>

1.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 이후에 유가족들의 오랜 노력 끝에 건립됐다. 재난을 대비한 안전교육과 더불어 다양한 안전체험교육 프로그램을 제공 중이다.

1.1 <대구 시민 안전 테마파크> 홈페이지: https://safe119.daegu.go.kr/

2. <대구 지하철 참사 유가족 대책위원회> 홈페이지: http://www.daegusubway.or.kr/


*이경희 작가 홈페이지

http://heeya3qhf.wixsite.com/leekyeongh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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