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14. 권은비 작가

<연재 인터뷰를 기획하면서>

카셀 도큐멘타(dOCUMENTA Kassel) 및 비엔날레, 트리엔날레와 같은 세계 주요 예술 행사를 개최하면서 자타공인 국제 사회에서 주요 예술 흐름을 선도하고 있는 독일. 그중에서도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 및 예술계 종사자들의 이목이 쏠려 집중되어 온 베를린. 독일 안에서도 수도라고는 믿기지 않는 저렴한 집세와 생활비 그리고 다양한 문화의 집합이라는 이유에서일까? 베를린은 흔히 말하는 예술가들이 사랑하는 도시이다. 미술계의 핫 플레이스인 이곳에서 필자는 다양한 예술계 종사자들을 만나고 그들의 생각과 철학을 함께 나눌 기회를 연재 인터뷰를 통해서 마련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열네 번째로 권은비 작가를 만나보았다. 다년간 한국에서 공공미술 작가로 활동해온 그녀는 오늘날 현대 미술의 중심지라고 불리는 베를린에서 학업과 작업을 병행 중이다. 최근 <Wasch Wasch Fest>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빨래’라는 행위를 통해서 전쟁의 아픔과 냉전의 공포를 참가자들과 함께 씻어냈다. 이번 인터뷰에서는 한국에서의 공공미술 활동과 독일에서의 <Wasch Wasch Fest> 작업을 중점적으로 이야기 나눠보았다. 더불어 예술이 사회 속에서 가지는 역할에 관한 작가의 의견도 들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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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ch Wasch Fest> 작업을 진행한 권은비 작가(맨 왼쪽) (사진 제공: 권은비)

이정훈(이하 ,,이’’): 안녕하세요.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인터뷰에서는 베를린에서 진행하신 작업을 중심으로 이야기 나누고자 합니다. 우선,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에는 어떤 계기로 오시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권은비(이하 ,,권’’): 안녕하세요. 저는 유년시절부터 독일에 관해서 흥미가 많았던 것 같아요. 독일 출신의 철학자와 예술가 하다못해 하드코어 록 그룹까지, 넓은 범위 안에서 다양하게 관심이 있었죠. 결정적으로는 제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을 좋아하는데, 그가 베를린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시기에 관해서 적은 책 <Berlin Kindheit um 1900>에서 언급되는 티어가르텐(Tiergarten)이라던지 초로기셔 가른텐(Zoologischer Garten) 등의 도시적 공간을 한국에서 상상하기가 힘들었어요. 책에서 언급된 장소에 직접 가서, 거닐면서 그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 마음에 베를린에 처음 오게 됐어요. 

그리고 한국에서 공공미술 활동을 해오면서 계속 가졌던 고민 중 하나가 작가주의적인 측면보다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 공공미술과 작업에 접근할 필요성을 느꼈어요. 이를 위해서는 역사, 철학, 사회학에 바탕을 두고 현상을 살펴보고, 고민하고, 사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한국에서는 그런 부분의 갈증을 채우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반면에 독일에서는 공공미술 자체에 관한 출판물뿐만이 아니라 철학적 혹은 사회학적 사유에 도움이 되는 요소가 많았던 점도 제가 독일로 오게 된 이유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이: 발터 벤야민의 책 속에 나온 장소를 거닐고 싶으셨다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웃음) 현재 베를린에서는 어떤 일을 하고 계시는지? 

권: 현재 공공미술과 이에 관한 내용을 배울 수 있는 학교에서 공부하고 있고, 동시에 개인적인 프로젝트들도 진행하고 있어요. 

이: 베를린에 오시기 전에는 한국에서 공공미술 활동을 해오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공공기관에서의 주도하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에도 활발히 참여하셨지만, 그중에 노원구 문화원이라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기관과 함께한 <경춘선 프로젝트>(2012)가 궁금합니다. 이 프로젝트에 관해서 설명해주시자면?

권: 말씀하신 대로, <경춘선 프로젝트>(2012)는 노원문화원과 함께했어요.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경기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안양 문화예술재단 등. 큰 규모의 공공기관을 주체로 진행돼요. 그런데 이 프로젝트는 한 지역에 있는 문화원 주도로 진행됐고, 저는 경춘선에 예술적 활동을 했으면 좋겠다는 문화원의 요구에 응해서 참여했어요. 경춘선은 나름의 역사가 있는데요. 철도 길은 남아있지만, 기차는 더는 달리지 않았고, 몇 년 후에는 공원으로 전환될 계획 때문에 철거를 앞두고 있었어요. 경춘선의 철거가 시작되기 전에, 노원 지역 안에서 뭔가 의미 있는 행사를 했으면 좋겠다는 문화원의 취지에 맞춰서, 지역 주민들과 함께 추억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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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프로젝트>(2012) 작업 사진 (사진 제공: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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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춘선 프로젝트>(2012) 작업 사진 (사진 제공: 권은비)

이: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유도하는 게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권: 그 부분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시민 사회단체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지역 주민들에게 참가 신청을 받고, 그분들과 함께 경춘선을 물들이는 콘셉트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저 같은 경우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듣고, 함께 만들어나가는 것이 공공미술 작업을 계속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인데요. 경춘선 프로젝트를 통해서 만난 주민들과 함께 경춘선에 얽힌 각자의 추억과 흔적을 땅 위에 함께 물들였어요.

이: 어떤 계기로 공공미술과 참여형 예술에 관심을 두게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무래도 제가 대학교에 다닐 때, 농촌에서 농사일을 돕는 활동, 소위 농활을 하면서 벽화를 그렸던 경험이 가장 큰 계기였던 것 같아요. 농활을 하기 전까지만 해도 작업실에서 틀어박혀서 페인팅 작업을 주로 했었어요. 그러다 농활을 가서 처음으로 공공 공간에 벽화를 그렸는데, 벽화를 그리는 동안 주민분이 다가와서 자신이 살았던 역사에 대해서 줄줄 이야기하거나, 동네 꼬마들이 ‘여기에는 이거 그려주세요, 저거 그려주세요.’라고 이야기를 하는 현상과 반응이 흥미로웠어요. 그냥 학교 작업실에서 혼자 작업을 하거나, 동료 혹은 교수와 이야기를 하면서 했던 작업과는 굉장히 다른 맥락이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한 번은 벽화를 완성하고 나서, 어르신들이 눈물을 흘리면서 제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하시고, 이런 그림을 본 게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하셨는데, 도시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는 충격이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새로운 경험이기도 했어요. 그림을 쉽게 접하고 볼 수 있는 사람에게 이를 보여주는 작가는 이미 많으니, 저는 그림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과 함께 작업해도 되겠다는 생각을 그때 처음 했어요.

이: 농활에서의 생경한 경험을 계기로 이후에 공공미술을 해야겠다고 결심하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서 잠시 말씀하셨지만, 당시 한국에서 공공미술이 생소했다 보니 주류적 장르로 인정을 못 받았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접근을 하셨는지?

권: 그 이후로 농활을 꽤 많이 갔었고, 앞서 이야기한 것과 비슷한 경험이 축적되면서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이에 관한 내용적인 갈증을 충족시키고 싶었어요. 그래서 이런 맥락의 미술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알고 싶어서 학교 도서관, 국회 도서관, 국립 중앙 도서관 등. 여러 곳을 전전하면서 자료를 찾아봤어요. 안타깝게도 공공미술을 제대로 다룬 자료를 찾지 못했는데, 맥락적인 측면에서 그나마 부합하는 것이 민중 미술이었어요. 걸개그림을 비롯한 사람들의 참여로 만들어진 과정이 민중 미술 초반에 있었지만, 이는 그저 공공미술과 비슷한 맥락일 뿐이었죠. 이것 외에 공공미술을 전문적으로 다룬 서적을 당시에 찾아보기 어려웠어요. 그러다가 제 기억으로는 2000년도 들어서서 공공미술이라는 사업이 공공예술·문화 기관에서 진행되면서,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관련 외국 서적 및 자료도 쉽게 접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이: 한국에서 다년간 공공미술 활동을 해오시면서 아쉬웠던 점이 있으시다면? 

권: 제가 경험한 한국의 공공미술은 우선 관심도 면에서 아쉬운 점이 많아요. 오늘날에는 많이 나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제가 한국에 있었을 때는 서울문화재단이라는 비교적 큰 공공기관에서 지원을 받는 공공미술 프로젝트임에도 불구하고, 이에 관한 관심이 높지 않았어요. 그러다 보니 미술 생태계 안에서도 장르적으로 변방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공공미술뿐만이 아니라 커뮤니티 아트와 참여형 예술을 이야기할 때, 항상 외형적인 평가가 우선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상과  작업의 과정에서 생성되는 담론보다 결과물이 어떻게 나오는지만 신경 쓰는 점이 아쉬워요.

이: 베를린에서 진행하신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재작년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인 <Wasch Wasch Fest>(2015)를 진행하셨는데요. 어떤 계기 혹은 어떤 배경 아래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신 건가요? 

권: 한국어로 직역하자면 ‘빨래 프로젝트’인데요. 독일도 한국처럼 분단의 역사가 있잖아요. 분단 시절, 동독 지역에 속했던 베를린 외곽의 베르나우(Berrnau)라는 지역에서 진행한 프로젝트예요. 베르나우 문화부에서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해줬으면 하는 요구가 있었고, 지원을 받아서 프로젝트를 진행했어요. 저를 포함한 총 8명의 작가가 참여했고, 2차 세계 대전 당시에 군사 시설로 쓰였던 공간에서 작업을 전시하면서 마무리했던 프로젝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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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ch Wasch Fest> 프로젝트 (2015)

이: 흥미로운 공간에서 작업을 보이신 것 같습니다. 어떤 공간이었고, 그 속에서 어떤 내용의 작업을 선보이셨는지가 궁금합니다.

권: 나치 시절 당시 베르나우(Bernau)에 지어졌던 군사 시설인데요. 2차 세계 대전에서 독일이 패전하고, 이후에 소비에트 군대가 들어오면서 90년대 초반까지 주거하고 주둔하면서 사용했던 공간이기도 해요. 89년 독일이 통일된 직후부터 2015년까지 민간인에게 폐쇄된 공간이었는데, 베르나우 문화부 주도로 이 공간에서 전시를 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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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까지 민간인에게 폐쇄되었던 군사시설에서 전시가 열린 모습 (사진 제공: 권은비)

8명의 참여 작가 중에서 우연히도, 제가 유일하게 아시아 국적의 작가였어요. 그렇다 보니 작업에 끌어 올 수 있는 이야기로, 제가 가지고 있는 분단의 경험을 베르나우(Bernau) 지역에서 독일 분단을 경험 한 또 다른 사람들과 같이 이야기를 해보면 좋을 것 같았어요. 리서치를 하던 중에, 냉전에 대한 공포를 제가 은연중에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지역 주민들 역시 전쟁과 냉전의 경험 속에 공포를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그래서 이 점에 관해서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겠다고 생각했고, 단순히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냉전의 공포를 씻어낼 수 있는 과정을 지역 주민들과 함께 경험하면 좋을 것 같았어요. 

지역 주민분들의 연령층이 꽤 높은 편이었는데요. 전쟁과 냉전의 시대를 살아온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하면서 눈물을 흘리시는 분들이 많았어요. 사실 그 눈물이 개개인의 아픔에서 비롯되는 것도 있지만, 우리 모두의 아픔이기도 하잖아요. 이렇게 마음에 쌓여있는 아픔과 한을 풀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고 싶었고, 모두 함께 전쟁과 냉전에 관한 불안과 고통을 씻어내고자 다 함께 비누를 만들고, 빨래를 했던 참여형 예술 작업이에요.

이: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주민들의 참여’이지 않을까 싶은데요. 어떤 과정으로 진행이 됐나요?

권: 사실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의 방법이야 다양하겠지만, 제가 취한 방식에서는 기본적으로 지역 주민들의 참여가 전제 조건이다 보니, 우선 지역 주민들에게 어떤 일을 하려고 한다는 것을 설명해야 했어요. 작업의 과정과 그 지역에 관한 나름의 조사와 연구,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작업의 콘셉트를 주민분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참여를 유도하고, 설득하는 과정이 있었어요. 이 과정을 지나서 참여자들을 모집하고, 참여 의사를 밝히신 분들과 함께 워크숍을 몇 차례에 걸쳐서 진행했어요. 마지막에는 전시를 통해서 워크숍 과정에서 만들어진 결과물을 보여주면서 마무리를 했어요. 아무래도 이 모든 과정이 짧게 이루어질 수 없다 보니, 최소 5개월 이상 그 지역에서 지내면서 작업을 했어요.

이: 주민분들의 참여가 원활하게 이루어졌는지도 궁금합니다.

권: 참여를 부탁드리기 이전에 사전적으로 접촉을 꾸준히 했어요. 무턱대고 ‘나는 예술가이고, 이 지역에서 의미 있는 예술을 하니, 당신은 여기에 참여해주십시오’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건 맞지 않다고 생각해요. 지역 주민분들이 자신의 일상에서 예술 활동을 하기 위해서 시간을 기꺼이 할애하는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어떤 목적의식만으로는 참여를 유도하고 설득하기 힘들거든요. 그래서 프로젝트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이전에, 주민들을 만나가면서 함께 커피 마시고, 수다도 떨면서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이런 시간까지 다 포함하면 2015년 한 해는 <Wasch Wasch Fest> 프로젝트를 위해서 온전히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이: 앞서 프로젝트 진행 과정을 말씀하시면서, 워크숍을 몇 차례에 걸쳐서 하셨다고 하셨습니다. 어떤 내용의 워크숍이었나요? 

권: 지역 주민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저와 주민들이 그간 담아뒀던 냉전과 전쟁의 아픔을 ‘빨래’라는 행위를 통해서 씻어내고자 했던 프로젝트인데, 빨래를 하려면 빨랫비누가 필요하잖아요. 그래서 비누를 만드는 워크숍을 했어요. 단순히 ‘우리가 빨래를 해야 하니까 비누를 만들자’라는 것보다, 비누를 만드는 과정에서 불안과 공포에 관한 경험담을 공유하는 시간이 필요했던 거죠. 그리고 워크숍에 참여하신 지역 주민분들이 자신이 겪었던 전쟁의 불안과 아픔을 나누면서 급속도로 친해지는 모습도 볼 수 있었어요. 어떤 분은 워크숍을 마친 이후에 ‘좋은 친구를 만나게 된 것 같다. 고맙다’라는 말씀을 해주셨는데, 그 말을 듣고 굉장히 기뻤죠. (웃음)

이: <Wasch Wasch Fest>(2015) 프로젝트에서의 핵심은 ‘빨래’를 함께 하는 것에 있는 것 같습니다. ‘빨래’라는 모티브는 어떻게 생각하게 된 건지 궁금합니다. 

권: 프로젝트에서 선보인 ‘빨래’는 사실 손으로 옷가지를 빨래판에 문지르는 게 아니라, 대야 안에 함께 들어가서 발로 밟는 거였어요. 참여자들이 지니고 있던 아픔과 슬픔을 ‘대야 안’이라는 같은 영역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나누고, 자신의 이야기를 분출할 수 있는 형식이면 좋겠다고 생각을 하다 보니 위와 같은 빨래 방식으로 진행하게 됐어요. 

 참여한 주민들이 빨래를 같이한다는 것에 굉장히 흥미로워했는데요. 독일은 한국보다 산업혁명이 일찍 일어난 곳이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빨래하는 건 너무 오래된 이야기였던 거예요. 여기서 아무리 나이가 드신 분들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빨래 방식은 그분들에게도 할머니의 할머니가 하셨던 오래 전의 모습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런지 많은 관심을 가져주셨고, 재밌게 삼삼오오 모여서 함께 빨래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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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ch Wasch Fest>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함께 빨래하는 모습 (사진 제공: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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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ch Wasch Fest> 프로젝트 참가자들이 함께 빨래하는 모습 (사진 제공: 권은비)

이: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서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가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권: 같은 동시대를 살고,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면서 겪는 재난과 사고는 사실 사회적 맥락과 밀접하게 연관되어있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전쟁과 그에 따르는 재난은 사회적 맥락과 더욱 밀접해 있다고 보는데, 이로부터 생기는 공포나 불안 혹은 피해는 결국에 개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몫으로 남아있는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런 부분이 항상 안타까워요. 저는 예술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이런 상황 속에서 예술과 예술가의 역할을 많이 고민하게 되는데요. 사회적 문제, 재난의 아픔을 말끔히 씻어내거나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Wasch Wasch Fest>(2015)와 같은 예술적 활동과 또 다른 소통 방식을 통해서 ‘당신의 아픔이 당신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 역시 비슷한 아픔을 지니고 있기에, 당신의 아픔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적어도 공감은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당신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가 모두 고민해야 할 문제입니다.’라는 걸 전달하고 싶었어요. 그동안 개인적인 문제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 보면 결국에는 우리의 문제이고,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함께 인식하고, 눈물을 흘릴 때 옆에서 어깨를 토닥여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걸 경험한다면, 지금 사는 척박한 세상이 조금은 살만한 세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아주 작은 경험이지만, 그런 계기를 프로젝트를 통해서 마련하고 싶었고, ‘혼자만의 아픔과 고통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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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ch Wasch Fest> 프로젝트 참가자 중 한 명이 작업한 비누와 텍스트 (사진 제공: 권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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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asch Wasch Fest> 프로젝트의 일련의 과정들을 종합적으로 전시에서 선보인 모습 (사진 제공: 권은비)

이: 비누 만들기 워크숍(Workshop)과 빨래하기 등. 프로젝트의 과정을 마지막에는 전시를 통해서 보여주셨는데요. 일련의 과정이 담긴 결과물을 본 사람들의 반응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권: 프로젝트 마지막에는 지역 주민분들이 만들었던 비누와 이 비누에 제목을 붙여서 쓴 텍스트(Text)를 같이 전시했어요. 지역 주민들과 함께 비누를 만들면서, 비누 안에 자신의 심경이 담긴 단어를 넣게 했는데, 어떤 할머니께서 ‘1988년’이라는 단어를 비누에 넣으시고, 텍스트(Text)에 ‘나는 아들을 잃어버렸다’라고 적으셨어요. 이 비누와 텍스트 역시 전시에 함께 선보여졌는데요. 한 관객분이 “전시장에 여러 비누가 있지만, 1988이라고 적힌 비누와 텍스트만으로도 많은 걸 이해할 수 있었다.”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비누를 만드는 과정이 단순히 빨래하기 위해서만은 아니었다는 것을 텍스트와 비누에 새겨진 단어들을 통해서 관객분들이 읽으실 수 있지 않았을까 싶어요. 

이: 2015년 한 해를 <Wasch Wasch Fest>(2015)를 위해서 보냈다고 앞서 잠시 언급하셨습니다. 긴 호흡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으셨나요? 

권: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보다 오히려 시작하기 전에 리서치를 할 때 어려웠던 것 같아요.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1부터 10까지 모든 사항을 고려하는 편인데, 한국에서 진행했을 때는 참여를 끌어내고자 하는 사람들의 반응을 예상하고 유추할 수 있었어요. 제가 한국 사람이고, 한국 사회에서 살면서 습득된 일종의 습관, 인식, 생활양식이 몸에 배어 있다 보니 ‘한국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하면 이런 반응이 있을 것이고, 이런 주제는 거부감이 있을 것이고, 이 주제는 좋아할 것이다’와 같이 계획을 세우면서 반응을 예상할 수 있었죠. 반면에 독일에서는 정보가 거의 없다시피 했기 때문에, 항상 계획을 세울 때 예측을 못 해서 어려움을 겪곤 했어요. 그래서 처음에 계획을 세울 때 고민이 많았고, 그런 과정이 힘들었어요. 그런데 막상 주민분들을 만나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지금까지 한국에서 진행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와는 다른 측면에서 너무나도 재밌고, 원활하게 진행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모든 반응을 예상하고, 고려하시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한편으로는 예상되는 반응을 고려하면 프로젝트가 지닌 가능성의 범위를 좁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드는데요. 모든 반응을 예상하고 준비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권: 제가 진행하는 작업의 주제가 전쟁과 냉전 그리고 그것으로부터의 상처와 아픔 등. 꽤 무거운 주제잖아요. 그러다 보니 의도치 않게 대화를 하다가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어요. 예를 들어, 가족 중에 전쟁으로 희생된 사람이 있는 참가자가 있다면, 저의 섣부른 질문 때문에 그 사람이 상처를 받을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제가 최대한 생각할 수 있는 경우를 생각하는 편이에요.

 그리고 참여로 이루어지는 예술 프로젝트는 결국 ‘의사소통’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가 굉장히 중요해요. 제가 ‘빨래를 합시다.’라고 해서 빨래를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공공미술 프로젝트를 하면서 자주 겪는 일이기도 한데요. 제가 ‘빨래를 합시다.’라고 말하고, 워크숍이나 작업을 시작하고 나서 어떤 사람은 ‘나는 물을 먹고 싶어요.’ ‘나는 지금 빨래하고 싶지 않아요.’라고 할 수도 있고, 짝을 맺어서 빨래를 해야 하는데 ‘나는 이 짝이랑 같이 하기 싫어요.’라고 하는 시시콜콜한 상황과 경우가 있을 수도 있어요.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작가는 상황을 대처할 수 있는 유연성이 필요해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빨래를 하려고 했으니까, 빨래를 해야 합니다.’라는 식으로 대처하면 이는 의사소통하는 게 아닌 거죠. 당황하지 않고, 유연하게 대화를 주고받으며 참여를 이끌어가는 건 결국 작가의 몫이기에, 가능한 많은 경우의 수를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 <Wasch Wasch Fest>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과 그 내용을 듣다 보니, 만약 이 작업을 한국에서 했다면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지 궁금해집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시면서 한국을 배경으로도 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셨는지?

권: 기회가 된다면 한국에서도 당연히 하고 싶죠. 왜냐하면 ‘대야 안에서 함께하는 빨래’라는 작업 방식을 제가 가지고 온 것도, 한국에서 자라오면서 자주 목격했던 풍경과 경험에서 기인하는 것이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독일 사람들이랑 전쟁과 냉전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지만, 한국 사람들과도 함께 ‘빨래’라는 행위를 통해서 이야기 나누면 참 좋겠다는 마음을 프로젝트 진행하는 내내 가졌어요.

이: 한국에서는 주로 사회적 이슈를 반영한 작업을 해오셨는데, 베를린에서는 냉전 이데올로기와 역사적 사실에 바탕을 둔 작업을 해오고 계십니다. 작업의 전체적 주제 방향이 바뀌게 된 이유가 있을까요? 

권: 베를린이라는 도시가 분단과 통일의 경험 그리고 흔적이 남아있는 곳이다 보니, 현재 분단을 경험하고 있는 한국 사람으로서 느낄 수 있는 공감대가 분명히 있었어요. 그런 점이 작업의 주제에도 영향을 끼쳤던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프로젝트 과정 중에 지역 주민들과 정치, 사회, 이데올로기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내가 과연 한국에서도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한국에서 한국전쟁에 관해서 이야기했을 때에는 개인의 생각 차이가 크다는 걸 자주 경험할 수 있었어요. 반면에 독일은 그런 차이가 크지 않고, 정치적·사회적 이념이 이야기하기 꺼리는 주제는 아닌 것 같아요. 

이: 한국에서는 전쟁에 관한 이야기를 하기 힘들다는 말씀이신가요? 

권: 세계 2차 대전과 마찬가지로 ‘전쟁’이라고 하더라도 한국 전쟁 같은 경우는 결국 냉전에 관한 이야기잖아요. 냉전을 이야기하려면 이데올로기에 관한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죠. 그게 자유주의든,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공산주의든 이데올로기와 정치·철학적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독일에서는 사실 아무렇지 않게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데, 만약 저보고 한국에서도 이런 주제로 이야기하라고 한다면, 제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혹은 사람들이 이데올로기를 주제로 거리낌 없이 서로 토론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래서 한국에서 이데올로기를 다루는 작업을 하기에는 어렵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있었고, 대신 독일에서는 조금 더 그런 이야기를 자유롭게 해보고 싶었어요.

이: 공공미술과 참여형 예술은 사회와 예술의 관계성에 바탕을 둔 미술의 장르라고 생각합니다. 한국과 베를린에서 활동하신 경험에 비추어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예술의 사회적 역할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권: 흔히 공공미술 프로젝트가 관공서와 함께 진행될 경우에, 도시를 아름답게 만드는 역할로서 예술이 쓰임을 받게 되는 걸 많이 목격할 수 있는데요. 저는 그것도 중요한 예술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다만, 그것만이 예술의 역할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하죠. 조금 낡아 보이는 도시를 재생시키는 차원에서 1억을 들여서 아름답게 외형을 치장하는 것보다, 예술이라는 방식 아래에 지역의 공동체와 함께 소통해서 눈에 쉽게 보이지 않았던 도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다듬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 과정에서 예술과 예술가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놓칠 수 있는 혹은 좀처럼 고민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만드는 것까지는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가장 좋은 답은 가장 좋은 질문으로부터 비롯된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 예술과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한국과 독일에서 공공미술,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를 하시면서 어떤 점이 다른지 궁금합니다. 

권: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데, 참여형 예술을 하기 위해서는 참여하고자 하는 주체가 자신의 시간을 들여야 해요. 즉, 참여자가 작업에 얼마나 가치를 지니고 있는지가 중요한데, 이런 부분에서 한국은 독일보다 참여를 끌어내기 상당히 어려운 것 같아요.

 예를 들자면, 공동으로 워크숍을 하기 위해서는 참여자가 시간이 있어야 하는데, 한국의 지역 주민들은 시간이 많이 없어요. 사실 직장을 다니거나, 자영업을 하는 분들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다들 피곤하거든요. 그런 사람들에게 ‘같이 빨래합시다.’라고 했을 때 얼마나 참여를 희망할지 의구심이 들어요. 예술가가 얼마나 잘 이끌어가는지도 중요하겠지만, 참여를 할 수 있는 시간이 있느냐 없느냐, 그 시간을 내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느냐 안되느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는 아무래도 노동시간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거대한 담론이다 보니 쉽사리 이야기하기가 힘든 부분이 있어요.

 한편으로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공공미술, 참여형 예술 프로젝트가 안타까운 게, 보통 소외지역이라고 불리는 곳에서 많이 진행되는데, 개인적인 경험을 예로 들자면, 한 번은 소외지역에서 프로젝트를 하기 위해서 들어갔는데, 지역 주민이 차라리 돈으로 달라고 이야기하시는 때도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예술가는 ‘내가 예술로 이 동네를 위해서 헌신하고 있는데, 돈을 달라고 하다니!’라는 태도를 보일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차라리 돈을 달라’고 했는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비단 예술가만이 고민할 문제는 아니고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지원금을 주는 공공기관과 기획자 모두가 같이 고민할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 말씀대로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 사회라는 점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겠지만, 사람들이 가지는 예술에 관한 인식도 프로젝트 참여 결정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에 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권: 앞서 농활 이야기를 하면서, 그림을 처음 봤다는 주민분이 있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그만큼 그림을 볼 시간이 없을 정도로 바쁘고 힘든 노동과 노동시간이 문제라고 생각해요. 예술에 관한 인식 혹은 흥미가 없다기보다는 힘든 노동이 생활 속에 우선순위로 자리를 잡다 보니,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지 않는 거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부분은 독일과 크게 차이 나는데요. 많이 알려졌다시피, 독일은 한국보다 노동시간이 적어요. 따라서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이 생기고, 그 시간을 참여 예술에 함께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거죠. 한국에서 쉽게 바꾸기 어려운 구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공공기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기획단계부터 이런 점을 고민하고 진행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 여러 방면에서 노력이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현재 베를린에서 학업도 하시고, 작업도 진행하시고 계십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베를린이라는 곳은 어떤 곳일까요?

권: 제가 겪은 바에 의하면, 베를린에서 지원금을 통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지원금을 제공하는 기관에서 일하시는 분을 만나 뵌 적이 없어요. 연락할 일이 없었어요. 무슨 이야기냐 하면, 예술가가 어떤 프로젝트를 하겠다고 했고, 아이디어가 좋다면 이를 기획한 예술가와 참여하는 사람들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거죠. 지원금을 주는 기관은 단지 지원을 하는 역할, 프로젝트를 홍보하는 역할만 맡아요. 이처럼 기관이 그들이 해야 하는 역할만 하는 것으로부터 예술가의 자율성과 기발한 상상력이 발현되는 것 같아요. 나아가 다양한 시도가 일어나는 베를린이 현대미술로 유명해질 수 있었던 토대의 한 부분이지 않을까 싶어요. 

또한, 예술가가 정치, 역사, 사회적 맥락의 작업을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고 장려하는 곳이에요. 정치적인 주제로 작업하는 걸 공공기관에서 아낌없이 지원해줄 수 있는 시스템과 사회적 분위기가 마련되어있어서, 금기시되거나 민감한 주제일지라도 예술이기 때문에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계기들이 베를린에는 마련되어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이: 어느덧 인터뷰의 마지막 질문입니다.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게 되시나요?

권: 예술가라는 이름으로 도시에 개입하고, 도시의 외모나 내용을 다루는 일이 공공미술인데, 저는 그런 맥락에서 조금 더 책임감 있는 사람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나는 조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으니, 미적으로 봤을 때 그냥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가 아니라, ‘왜 그렇게 해야 하는지’에 관해서 논리적이고, 철학적으로 말할 수 있고, 이러한 내용을 담은 담론을 생산하는 공공미술가로 활동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지역 주민들을 많이 만나고, 작업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학, 철학에서 생성된 이론을 공부하고 연구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아요. 베를린에서 접하는 새로운 이론과 지식을 잘 소화해서 앞으로도 작업으로 보여주고 싶습니다.

이: 오늘 인터뷰에서 좋은 말씀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권: 감사합니다.


*작가 소개

권은비는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미술작가이다. 2006년부터 본격적으로 공공미술 및 참여미술 프로젝트를 한국에서 진행해왔다. 예술의 사회적 역할이라는 화두로 자본, 정치, 사회, 국가 등에 대한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관심을 가져왔으며 대다수의 예술프로젝트를 지역주민 또는 관객들의 참여와 협업으로 만들어왔다. 예술을 통한 사회적 문제를 비판적으로 해부하기 위해 다양한 예술적 방법론으로 예술프로젝트를 실행해왔다. 주요 프로젝트들은 공공장소에서의 설치미술을 비롯, 일시적 설치미술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작품들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 베를린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언론매체 등에 글을 기고하고 있다.

*<Wasch Wasch Fest> 프로젝트 

http://waschwaschfest.tumbl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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