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뒤렌마트의 희곡 을 DT(Deutsches Theater)에서 봤다. 내 생애 처음으로 읽었던 희곡이라서 기대가 매우 컸다. 하지만 너무 별로였다.

어제 봤던 무대는 극이라기보다는 뮤지컬에 더 가까웠다. 그렇다고 해서 무대 중간에 나오는 노래들이 인상적이거나 잘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무대 장치가 너무 번거롭게 많았고, 그에 따라서 전체 무대 공간을 너무 협소하게 썼다. 보는 내내 너무 답답했다. 무엇보다 나름의 연출로서 클레어 자하니시안(여주인공)을 하나의 극 안에서 5명의 배우가 돌아가면서 맡았는데, 신선하기보다는 오히려 번잡스러워 보였고 전혀 집중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여주인공을 맡은 배우들이 그 역만 맡은 것이 아니라 돌아가면서 주변 인물들, 예를 들자면 시장, 신부, 일의 아이들, 일의 부인, 장님 둘, 화가 등.을 겸하다 보니 미세하지만, 연기가 섞여버리는 모습이 나오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더욱 심각했던 건 역할이 무대 의상으로 구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하나의 무대 장치로서 의상이 존재했다. 조금 더 자세하게 설명하자면, 인물을 상징하는 의상을 판에 그림으로 그려서 세워놨고, 배우들은 그 뒤에 서서 자신이 지금 이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단한 팔 움직임과 함께 대사 내용으로서 표현했다.

이를 보면서 요즘 정리하고 인터뷰의 주인공인 혜진 씨의 말이 생각났다. (참고로 혜진 씨는 함부르크 미대에서 무대 미술을 전공하시고 최근 졸업하셨다.)

‘(연)극은 팀 프로젝트이고 그래서 연출, 무대 미술, 조명, 의상 등. 모든 분야의 조화가 가장 중요해요.’라는 그녀의 말이 머릿속에 맴돌았다. 사실 이 말은 혜진 씨가 직접 한 말은 아니고, 본인도 담당 교수에게 조언으로 들었던 이야기이다.

어제 봤던 은 무대 미술/장치가 연출, 조명, 음악, 의상 모두를 잡아먹어 버렸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극을 보는 내내, 학생들의 연극 발표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도 극의 마지막 부분, 즉 궐렌(Güllen)이라는 도시의 모든 시민이 정의라는 허울 좋은 이름 아래에 일의 사형을 선고하는 내용에서는 공간이 뒤편까지 확 트이면서 그 상황에서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살인의 합리성을 외치는 배우들의 목소리가 잘 전달됐다. 그만큼 무대라는 물리적 공간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서 극 전체의 느낌이 달라진다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다. 앞서 말한 대로 극이 전체적으로 학생들의 발표회 같은 느낌이었지만, 마지막 부분만은 현대적이고 세련된 느낌이라서 집중해서 볼 수 있었다.

나의 기대가 너무 컸던 것일까… 오히려 Schaubühne에서 뒤렌마트의 극을 해석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만을 머금고 집에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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