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핏차퐁의 영화에 빠져있었던 지난 주말을 이야기하기 전에, 오늘 베를리너 앙상블(Berliner Ensemble)에서 봤던 희비극 <Die Wiedervereinigung der beiden Koreas>에 관해서 먼저 적는다. 아무래도 연극이라서 순간의 기억이 다음 날 증발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은 전혀 기대하지 않고 봤는데 너무 좋았던 게 더 크다.

지난주에 베를리너 앙상블 현장에 가서 표를 샀다. 전날에 보고 싶은 연극의 상연 일정을 알아보고, 나름대로 계획을 짜서 갔다. 브레히트의 작업 서푼짜리 오페라(Die Dreigroßschenoper), 빅토르 휴고의 레미제라블(Les Miserable) 그리고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Die Blechtrommel)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장에서 학생 할인표는 양철북 말고는 구매가 불가능하다고 해서 양철북만 현장에서 표를 구매했다. 그렇게 집에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곰곰히 생각을 해봤는데, 비싸더라도 그냥 표를 샀어야 했다. 바로 사지 않았던 게 후회가 됐다. 뭐든 간에 무조건 많이 보는 게 요즘의 목표인데, 비싼 가격 앞에서 주눅 들었던 모습이 떠올라서 부끄럽기도 하고 왠지 모르게 슬펐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서 다시 홈페이지에 들어갔다. 언제쯤 표가 있는지를 찾아보다가 문득 ‘Die Wiedervereinigung der beiden Koreas’라는 글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의역하자면 ‘분단된 한국의 재결합 혹은 남한과 북한의 통일’ 정도로 말을 할 수 있겠다. 정말 뜬금없이 ‘한국’ ‘통일’ 이라는 단어가 있길래 혹시나 한국 출신 연출가가 맡은 극인 건가 싶어서 들어가 봤다. 전쟁 혹은 냉전에 관한 이미지를 머릿속에 떠올렸다. 이와 동시에 클릭해서 해당 극의 이미지를 봤는데, 내가 예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전쟁이나 냉전에 관한 그 어떤 이미지도 보이지 않았다. 스틸컷에서 보이는 무대나 배우들이 입은 의상에서도 특별한 점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너무도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추측조차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흥미가 조금 생겼던 걸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괜찮은 좌석이 저렴했다. 그래서 고민 없이 바로 표를 샀다. 그리고 레미제라블 표를 샀다. (서푼짜리 오페라는 이미 매진이었다.)

그렇게 아무런 사전정보와 기대감 없이 <Die Wiedervereinigung der beiden Koreas>를 봤다. 극이 시작하기 전에, 옷을 맡기면서 극에 관한 텍스트가 담겨있는 소책자를 샀다. 사고 나서 곧바로 시작해서 다는 못 읽었지만, 짧게나마 살펴 볼 수 있었다.  총 20개의 짧은 희비극이 하나의 극을 구성하고, ‘Liebe(사랑)’에 관한 내용이었다. 총 3시간의 길이에도 흐름과 호흡이 굉장히 빨라서 지루함을 전혀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막을 내릴 때, 너무 빨리 끝나서 아쉽다고 생각했다. 다양한 상황과 그 내부에서 사람들 사이에 관계하는 사랑에 관한 관념적이면서 동시에 유머스러운 대화 속에 빠져들고 싶었다. 무려 20개의 극의 서사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했고, 그 사이의 관계에서 혹은 상황에서 사랑에 관한 물음이 던져졌다. 그 중에서도 남녀 관계에 관한 현실적인 이야기 속에서 사랑이 과연 무엇일까?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사랑만으로 충분한가? 와 같은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을 끊임없이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홍상수의 영화가 생각났다.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극작가 조엘 포메라트(Joël Pommerat)의 원작을 바탕으로 하는데, 프랑스 출신이라는 걸 보고서 홍상수가 떠올랐던 건 당연한 것이었을지도라고 생각했다. 혹은 작가가 어쩌면 누벨바그의 영향을 받았던 것일수도 있겠다 싶었다.)

사랑(Liebe)이라는 개념이 극 서사의 중심을 꽉 잡고 있어서 그런지 전체적으로 이야기가 세어나가는 게 없이 탄탄했다. 이를 바탕으로 20개의 희비극이 얹어지는 구조는 꽤 영리하다고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중간중간에 샹송이 들어가면서 극의 흐름을 중재했다. 서사 흐름의 안정성과 내용의 다양성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는 구조였기에, 극의 완성도는 더할 나위 없이 최상이었다. 그리고 자칫하면 지루해질 수 있는 사랑에 관한 대화는 배우들의 연기력에 힘입어 반짝반짝 빛이 났다. 그만큼 연기력도 극의 완성도에 한몫했다.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무대가 굉장히 흡족했다. 지난주에 DT에서 봤던 뒤렌마트의 <어느 노부인의 방문>에서는 무대 위의 설치물이 너무 많고, 복잡했다. 이는 무대 위 배우들의 움직임을 제한시켰고, 그들의 연기력 혹은 연출, 조명, 의상 등의 다른 분야를 무자비하게 잡아 먹어버렸다. 결국 관객으로서는 답답하고 지루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오늘 봤던 극은 무대가 ‘내가 무대입니다!‘라고 나서지 않고 있었고, 배우들의 동선, 연기력 그리고 의상, 조명과 함께하기 위해서 한 발자국 뒤로 물러나 있는 게 보였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양보를 한 건 아니었다. 무대는 세 개로 분할되어있었다. 양 끝쪽은 고정되어있었고, 가운데 무대만이 회전할 수 있었다. 덕분에 20개의 희비극 배경 변화를 유동적으로 감당할 수 있었다. 그리고 조명과 음악 각자의 위치에서 극에 긴장감을 불어넣고 있었고, 현대극에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기성복도 극의 서사를 부드럽게 이끌어주었다. (이는 지난 <어느 노부인의 방문>와 비교했을 때 더할 나위 없이 나의 눈을 편하게 해줬다. 실제로 보면서 답답해서 먹었던 저녁 식사가 소화가 안 될 정도였다.)

앞서 사랑에 관한 다양한 상황이 희비극을 채우고 있다고 언급했다. 전부는 아니겠지만, 기억나는 대로 적어본다.

20년 동안 같이 살았지만 더는 사랑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혼 신청을 한 부인, 서로의 사랑이 진실한 것이라고 싸우는 레즈비언 커플, 결혼식을 앞둔 새신부의 언니, 동생 그리고 엄마와 키스를 한 신랑,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실을 방금 같이 자고 나온 매춘부에게 고백하는 신부와 그를 사랑하기에 붙잡아두고 싶은 매춘부, 갑자기 돌아온 집을 떠났던 전남편과 그를 반갑게 맞이하는 부인 그리고 이를 두고 어리둥절한 현 남편, 자신의 침대에 학생을 재우고, 그 옆에 따라 누워 잤던 사실을 알아차린 학부모에게 학생을 사랑하는 것이 직업적 소명이라고 설명하는 교사,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 임신한 여성의 출산을 말리는 담당 의사와 사랑으로부터 기인하는 것은 뭐든지 옳다고 이야기하는 여자,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부인을 돌보면서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지만 여전히 부인을 옆에서 사랑하는 남성, 갑작스럽게 새벽에 깨어나 우리의 사랑은 충분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남기고 떠나는 여자, 친구와의 관계를 두고 이것이 우정인지 혹은 사랑인지를 고민하는 남성, 최소한 5유로라도 받아서 자신이 동물이 아닌 것 같다고 안심하고 고마워하는 매춘부 등의 상황, 인물 그리고 관계가 극을 이끌어갔다.

사랑의 정의와 관점은 다채로웠다. 누군가에게 사랑은 절대적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가벼웠다. 한 방향으로 쏟아붓는 사랑도 있었으며, 다른 방향으로 도망치는 사랑도 있었다. 때로 사랑은 목숨을 위협하는 무기로 쓰이기도 했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위한 최후의 방어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서 때로는 전혀 모르는 사람의 희생과 헌신이 필요하기도 했다.

극을 보는 내내 사랑에 관해서 평범하면서도 진지한 그리고 때로 웃긴 대화들이 너무 좋았다. 다 보고서 관념적 가치와 이를 위한 사색이 종식된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한 번쯤 멈춰 서서 쓸데없는 고민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사랑은 무엇인가. Was ist die Liebe

Advertisements

답글 남기기

아래 항목을 채우거나 오른쪽 아이콘 중 하나를 클릭하여 로그 인 하세요:

WordPress.com 로고

WordPress.com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Google+ photo

Google+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Twitter 사진

Twitter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Facebook 사진

Facebook의 계정을 사용하여 댓글을 남깁니다. 로그아웃 /  변경 )

%s에 연결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