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부르크 미술 대학교(HFBK Hamburg)에서 무대 미술(Bühnenraum)을 졸업한 윤혜진 작가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독일 미대생 인터뷰를 기획하며>

 짧은 기간을 두고 자주 바뀌는 한국의 입시제도. 특히나 학교 공부와 실기를 병행해야 하는 미술 계열 학생은 매번 달라지는 입시 방향을 쫓아가기 배로 바쁘다. 힘든 입시 과정을 무사히 통과하고 바라던 학교, 학과에 입학했다는 성취감도 잠시. 매 학기 버겁기만 한 학비와 재료비는 학생들이 창작활동과 배움에 온전히 시간을 쓸 수 없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최근에는 돈이 안 된다는 이유로 예술대학을 통폐합시키는 대학의 방침에 많은 논란이 있었다. 인간의 창의성을 다루는 예술 교육을 자본주의적 사고로만 입각해서 바라보는 오늘날의 교육 방침과 정책은 예술가의 삶을 꿈꾸는 학생들의 장래를 더욱 어둡게 만들고 있다.

 이에 반해 단기간의 성과가 없더라도 꾸준히 지켜봐 주며 창작과 예술 교육의 가치를 높이 여기는 독일. 이러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 미술 대학의 교육 덕분에, 독일은 미술계가 주목하는 작가를 꾸준히 배출하고, 나아가 현대미술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필자는 오늘날 독일이 현대 미술계에서 가지는 위상의 원천으로 독일의 미술 대학(Kunsthochschule, Kunstakademie)과 그 안에서 이뤄지는 교육을 주목하며, 현재 재학 중인 학생들을 만나 독일의 미술대학에서 경험한 입학·교육 과정에 관해서 이야기 나눈다. 또한, 지속적인 인터뷰를 통해서 한국의 미술 대학 입시 및 교육 과정의 전반적인 문제점도 함께 짚어보고자 한다.

연재 인터뷰의 여섯 번째로 최근 함부르크 미술대학교(Hochschule für bildende Künste Hamburg)에서 무대 미술(Bühnenraum) 전공을 최근 졸업한 윤혜진 씨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이정훈 (이하 ,,이’’): 안녕하세요. 바쁘신 중에도 인터뷰에 흔쾌히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인터뷰는 처음으로 졸업자의 이야기를 담습니다. 최근 졸업을 하신 만큼 독일 미술 대학교에서 경험하신 수업과 졸업 과정 그리고 졸업 이후의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독자에게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윤혜진 (이하 ,,윤’’): 안녕하세요. 함부르크까지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 학교에서는 제가 처음인 거죠? 말을 잘 해야겠네요. (웃음)

이: 함부르크 미술 대학교는 혜진 씨께서 처음 말씀해주시는 거죠. 입학부터 졸업까지의 경험을 가감 없이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럼 최근에 졸업하신 거죠? 지난 여름학기에 학업을 마무리하신 건가요?

윤: 그렇죠. 지난 학기의 끝자락인 7월에 졸업 전시를 했어요. 원래 그 시기가 다른 학교와 마찬가지로 룬트강(Rundgang)을 할 때인데, 이번에 공간을 두고 협의가 이뤄지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7월에는 졸업하는 학생만 전시하기로 했어요. 그리고 이번 겨울 학기에 룬트강이 열릴 예정이에요.

이: 독일의 미술 대학교를 졸업했다는 게 과연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데요. 

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여기는 졸업식이 따로 없으니까 실감이 나진 않아요. 그리고 너무 정신없이 달려온 거라서 홀가분하기보단 허무한 느낌이 더 큰 것 같아요. 게다가 20대를 함부르크에서 거의 다 보냈는데, 졸업하고서 계속 여기서 있어야 할지 아니면 다른 곳을 가야 할지 고민도 많고 막막하기도 하네요.

함부르크 미술 대학교 무대 미술 전공 졸업장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이: 무대 미술(Bühnenraum)을 전공하셨습니다. 보통 무대 미술이라고 하면 ‘Bühnenbild’라는 단어를 많이 쓰는데, 공간이라는 뜻의 ‘Raum’을 쓰는 점이 독특합니다. 

윤: 다른 학교에서는 무대 미술을 ‘Bühnenbild’라고 많이 쓰지만, 저희는 ‘Bühnenraum’이라고 명칭하고 있어요. 시각과 디자인적인 측면보다는 공간적으로 접근하는 경향이 많아서 그런 것 같아요. 보통 무대 미술 혹은 무대 디자인이라고 하면 연극, 영화 그리고 방송과 관련해서 스튜디오와 세트를 꾸미는 일이라고 많이들 알고 계시는데, 저희는 공간(Raum) 자체를 연출하는 작업을 많이 해요. 그래서 ‘Bild(그림)’라는 단어보다는 ‘Raum(공간)’이라는 단어가 저희 학과를 설명하기에 더 적절한 것 같아요. 듣기로는 베를린이나 드레스덴 미대의 무대 미술 학과는 연극 무대 관련해서 작업을 많이 한다고 하더라고요. 전시나 룬트강에서도 그런 작업 위주로 많이 보여준다고 하던데, 저희는 무대 미술이라고 해서 연극 무대 관련 작업을 꼭 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작업이 열려있어요.

이: 작업의 범위가 넓다는 말인가요?

윤: 네. 작업의 범위가 꽤 넓어요. 기본적으로 공간을 어떻게 표현하고 생성할지 고민하면서 동시에 다양한 시도를 해요. 무대에만 국한된 작업을 하진 않아요. 공간 안에서 설치 작업만을 할 때도 있고, 회화나 드로잉 작업만을 할 때도 있죠. 그 와중에 한 가지 공통점은 작업의 크기가 전부 크다는 건데, 아무래도 공간을 다루고 이를 채우는 작업을 해서 그런 것 같아요. 그래서 나중에 철거할 때 굉장히 허무해요.

이: 그렇군요. 사실 무대 미술은 시각 예술보다 공연 예술 쪽에 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낯설면서도 흥미롭습니다. 무대 미술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으셨나요?

윤: 사실 제가 원래는 사진 전공자라서 ‘무대’라는 말과 ‘무대 미술’이라는 전공이 낯설었어요. 그리고 독일에 온 것도 무대 미술을 공부하기 위해서가 아니었고, 사진을 더 배우고 싶어서 왔어요. 함부르크 미술 대학교에 제가 원하는 교수가 있어서, 이 학교에만 사진학과로 두 번을 지원했었거든요. 그런데 제가 여기서 무대 미술을 공부할 거라고는 전혀 상상 못 했죠.

함부르크 미술 대학교 모습 (사진: 이정훈)

이: 원래 사진을 전공하셨군요? 그러면 함부르크 미술 대학교에서도 처음에 사진을 공부하신 건가요? 아니면 준비 과정에서 무대 미술로 진로를 바꾸신 것인지?

윤: 사진학과로 들어왔었고, 중간에 전과했어요. 한국에서도 사진을 전공했는데, 2학년까지 다니다가 중퇴했어요. 당시에 고민을 정말 많이 했었어요. 그때 담당 교수님이랑 상담했는데, 독일에서 공부하는 걸 추천받았고 그렇게 독일로 왔어요. 그리고 함부르크에서도 3학기 때까지 사진을 했어요. 그러다가 3학기 말 무렵에 무대 미술(Bühnenraum)로 옮겼죠.

 사실 사진이라는 게 개인적인 감정이나 사상이 들어가면서 굉장히 외로운 작업이 되거든요. 더욱이 매체의 특성상 평면 작업을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계속 평면만 보고 있자니 어느 순간 답답함이 느껴지더라고요. 사진 한 장으로 제가 표현하고 싶은 것, 보여주고 싶은 것 그리고 말하고 싶은 걸 전부 담을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평면에 갇혀있기보다 입체 속에서 작업을 풀어보고 싶었죠. 마침 사진에서 다루는 조명과 빛을 이용한 작업을 고민 중이었는데, 이게 공간이라는 개념과 맞물렸어요. 그 안에서 조명부터 연출, 디자인까지 할 수 있었는데, 그간 평면 작업에서 가졌던 답답함을 해소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이 보이더라고요. 그리고서 사진학과를 계속 다녀야 할지 아니면 과를 바꿔야 할지 고민했어요. 스트레스도 엄청 많이 받았죠. 그러던 중에 어느 날 정말 아무 생각 없이 학교 홈페이지를 보는데, 새로운 학과가 눈에 띄더라고요. 그게 무대 미술(Bühnenraum)이었던 거죠.

이: 무대 미술을 접한 과정이 굉장히 극적인데요? (웃음) 새로운 학과가 눈에 들어왔다고 하셨는데, 이전에는 없었던 학과라는 말인가요? 

윤: 그 전에도 있었지만, 제 눈에 안 보였던 거죠. 오로지 사진이었으니까 다른 과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거든요.

한국에서는 제가 너무 사진, 사진, 사진 이러는 게 있다 보니까 계속 스트레스를 받았거든요. 그런데 독일에서는 내가 사진을 해야만 한다는 강박을 느끼지 못했었어요. 오히려 저를 사진 안 하는 사람으로 만든다고 해야 하나…. 뭐 그런 느낌이었어요. 일단은 같이 공부하는 동기들이 사진을 하지 않았고, 제가 한 번도 접하지 못했던 분야와 장르의 작업을 하던 친구들이 모두 섞여 있었어요. 그전까지 사진만 주야장천 보다가, 그림을 그려오는 친구, 설치로 만들어오는 친구, 영상 찍어오는 친구들의 작업을 보니까 너무 신기하고 재밌더라고요.

 그때 마침 독일에서 무대 미술 관련 작업을 하는 아는 후배의 작업을 봤는데,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이게 뭐냐고 물어봤더니 무대 미술이라고 하는 거예요. 그걸 보면서 제가 사진으로 표현하고 싶었지만 어려웠던 부분이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어요. 늘 보이는 혹은 드러나 있는 공간을 사진으로 담아왔는데, 내가 원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고, 내용을 연출할 수 있고, 그걸 사진으로 다시 담아낼 수도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어요. 이러한 상황과 환경이 겹치면서 무대 미술로 전공을 바꾸게 됐어요.

무대 미술(Bühnenraum) 교수 Raimund Bauer (사진: Imke Sommer)

이: 무대 미술로 전과하는 건 어렵지 않나요? 

윤: 어렵다기보다는 과정이 좀 있었죠. 무대 미술 교수님이 클라쎄(Klasse, 반)에 들어오는 걸 허락해주셔야지 들어갈 수 있으니까 몇 번이고 찾아갔어요. 제가 그전까지 가지고 있던 고민을 솔직하게 말씀드렸고, 미흡하지만 해왔던 작업을 정리해서 들고 갔죠. 찾아간 지 네 번째에 허락받았어요.

이: 무대 미술로 전공을 바꾸고 후회한 적은 없으세요? 

윤: 음…. 처음에는 사진을 배신하는 느낌이 좀 있어서 힘들었는데, 막상 옮기고 나서는 재밌게 했어요. 후회는 없어요. 졸업한 지금도 무대 미술을 공부한 걸 후회하지 않고요. 그보다는 처음에 좀 당황을 했죠. 막상 들어가니까 배울 게 너무 많더라고요. 다행히 빨리 적응했지만, 전체 분위기부터 세부적인 수업 일정까지 이전과는 다르더라고요. 사진학과는 이론보다 작업에 초점이 더 맞춰져 있다면, 무대 미술은 이론 쪽에 훨씬 더 가까웠어요. 그리고 수업 일정, 형식 그리고 방식도 차이가 컸어요. 사진학과는 아무래도 개인 작업이 중요하다 보니까 일 주 혹은 이 주에 한 번씩 모여서 작업을 보여주고, 이야기를 나누는 형식의 수업이거든요. 막연하게 무대 미술도 똑같겠거니 했는데, 여기는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이론과 실기 수업으로 꽉꽉 채워져 있더라고요. 예를 들어 무대 미술의 기본 이론, 역사, 미학 등의 이론 수업과 조명, 오토 캐드(AutoCAD), 스케치업(Sketch UP), 무대 도면 제작, 모델 바우(Modellbau)와 같은 실기 수업으로 일주일 내내 바빠요. 몸은 힘들어도 재밌게 배웠어요. (웃음)

무대 미술 작업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사실 그전에 사진을 전공할 때는 ‘내가 잘 하는 건가?’ 혹은 ‘잘 배우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의구심에 방황 아닌 방황을 했어요. 그런데 무대 미술에서는 그런 생각을 좀처럼 안 하게 되더라고요. 그런 걸 보면 확실히 무대 미술이 저랑 잘 맞는 것 같아요. (웃음) 그리고 사진을 오랫동안 해왔던 게 무대 미술에서 장점으로 작용하기도 했어요. 사진을 하다 보면 프레임(Frame)을 보는 눈이 생기는데, 덕분에 무대 미술에서 필요한 (공간) 연출력에 도움이 많이 됐죠.

이: 무대 미술을 안 하셨으면 어쩔 뻔했어요. (웃음) 본격적으로 무대 미술 전공과 졸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기 전에, 오랫동안 해오셨다는 사진은 어떻게 처음 접하셨는지가 궁금합니다. 

윤: 사진을 처음 접하게 된 계기요? 음…. 믿기 어려우실 수도 있겠지만,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꿈이 사진작가였는데, 이는 부모님으로부터 영향을 많이 받았죠. 한날은 부모님께서 집에 있는 카메라를 꽁꽁 싸매서 옷장에다가 고이 보관하시는 걸 보고 난 이후부터, 카메라는 저한테 미지의 세계가 됐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어떻게든 저걸 가져보고 싶었어요. 지금도 호기심이 많지만, 그때는 어린 마음에 호기심이 지나칠 정도로 많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 아빠가 필터 카메라를 쓰셨는데, 사진을 찍어줄 때 나는 철컥? 찰칵? 하는 소리가 너무 좋았어요. 게다가 건축 일을 하셔서 사진 찍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접할 수 있었어요. 그렇게 사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함부르크에서 전공했던 무대 미술도 어릴 적부터 나름 접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무대 미술이라는 게 좁게는 무대를, 넓게는 공간을 다루니까 건축적 관점이 필요하고, 상당 부분 겹치기도 하거든요. 아빠가 일하면서 펼쳐놓은 공간 사진이나 도면 그리고 캐드(CAD) 작업하는 모습이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줬지 않을까 싶어요. 지금 제가 무대 미술 작업하는 모습과 비슷하거든요. 아무튼, 신기하네요. (웃음)

이: 그러면 사진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 사진학과로 진학하신 건가요?

윤: 그때는 막연했었던 것 같아요. 직업적인 걸 떠나서 그냥 사진이 좋으니까 사진작가가 되고 싶은…? 그런 단순하고 가벼운 마음이었어요. 혼자서 밖을 돌아다니며 사진 찍는 걸 즐겼는데, 그 시간 자체가 좋았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내가 잘하는 게 무엇인지를 생각했을 때 사진 말고는 없어서 사진 학과까지 가게 된 것 같아요.

이: 사진학과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학하나요? 회화나 조소과의 입시는 그간의 인터뷰를 통해서 들었는데, 아무래도 사진이나 영상은 조금 다르지 않을까 싶어요. 

윤: 고등학교 때부터 입시를 준비했는데, 학원이 따로 있어요. 요즘은 사진이 워낙 대중화되었고, 인기가 많은 만큼 입시 학원의 규모도 커진 걸로 알고 있어요.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사진이 지금처럼 인기가 많지는 않아서, 제가 다녔던 입시 학원은 오늘날과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작은 곳이었죠. 입시 학원이라기보다는 원래 아마추어로 사진을 하시는 분들이 오셔서 스튜디오 촬영도 해보고, 인화도 해볼 수 있는 시설이 갖춰진 곳이었는데, 그런 곳에서 사진을 배운 거죠. 그리고 입시에서 사진 이론 시험을 치기 때문에, 사진 관련 이론도 전부 공부해야 했어요. 음… 배웠다기보다는 그냥 줄줄이 외웠다고 하는 게 더 정확하겠네요.

이: 대학에서 사진을 배우기 위해서 지원한 학생에게 이론 지식을 요구한다고요? 

윤: 네. 지금 생각해보면 좀 어이없어요. 이제 막 본격적으로 사진을 하려고 하는 사람을 상대로 모든 사진 이론을 알고 있기 바랐던 것 같았거든요. 사진학 개론, 사진의 역사를 정말 달달 외웠어요. 너무 많이 외워서, 지금까지 사진이 처음 발명된 날짜며 연도까지 다 기억할 정도예요. 그리고 조리개, 감도 등의 사전적 정의도 전부 외웠어요. 정말로 시험에 들어가면 교수가 물어봐요. ‘감도가 몇인데, 조리개가 얼마다. 셔터는 어떻게 해서 찍으면 좋을 것 같나?’ 혹은 ‘렌즈로 조리개를 표현해봐라’ 이런 식으로 말이죠. 아무리 생각해봐도 대학에서 사진을 본격적으로 배워야 하는 학생에게 너무 많은 걸 원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학교에 가니까 수업이 재미없는 거예요. 그게 정말 문제인 거죠. 저도 처음에는 사진 찍는 걸 좋아하고, 그 시간을 즐기고, 사진이 나오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밌어서, 그걸 더 배우려고 학교에 가려고 한 거거든요. 그런데 달달 외우는 게 전부인 입시를 거쳐서 막상 학교에 들어가니까 제가 기대했던 것과는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빨리 중퇴했어요.

이: 어떤 점이 기대했던 것과 다르던가요? 

윤: 가장 충격적인 경험은 제가 사진을 찍어가면 교수가 점수를 매긴다는 거였어요. 왜 어릴 때 껍질 벗겨가면서 쓰는 빨간펜 있잖아요. 그걸 가지고서 사진 위에다가 점수를 적어요. 저는 아직도 그게 노이로제(Neurose)로 남아있어요. 점수만 매기면 그나마 다행이죠. 심할 때는 사진에다가 엑스 표시를 하는 것도 봤어요. 학생이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열심히 작업해 온 인화지에다가 ‘이건 70점, 저건 80점’ 혹은 ‘이건 도저히 아니다’라며 엑스를 표시하는 걸 보고 엄청 충격받았어요. 그렇게 숫자로 점수를 내다보니까, 저희도 이 사진은 70점짜리고, 이건 100점짜리다고 인식하게 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저희끼리도 100점 많이 받는 학생, 70점만 주로 맞는 학생. 이런 식으로 그룹이 나뉘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났던 거죠. 그게 너무 싫었어요.

 그리고 교수가 그런 식으로 점수를 매기면서 예술을 하고자 하는 사람을 자기 입맛대로 만들어버린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당연히 너도나도 좋은 점수를 받고 싶으니까 교수가 원하는 취향에 맞춰서 사진을 찍어가게 되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 정말 점수의 노예가 되어버렸더라고요. 그나마 다행인 건 다른 전공 교수님 중 한 분이 그런 저희 모습을 날카롭게 잘 찔러주셨어요. ‘너희 정신 똑바로 차리라고, 너네 4000만 원 넘게 내고 졸업하는 거라고, 이렇게 계속 공부하면 아깝고 부질없는 짓이 된다’고 충고해주셨죠. 덕분에 마냥 저냥 점수의 노예가 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 빨간펜으로 인화지에다가 점수를 매기는 건 정말 충격이네요. 학생에 대한 존중 결여이자, 교수라는 직책을 통해서 권력을 남용하는 듯한 인상도 풍깁니다. 

윤: 사실 그런 점 때문에 학교 안에서도 말이 많긴 했어요. 사진 찍는 걸 좋아해서 사진학과에 갔는데, 너무 재미없게 배웠어요. 그래도 그 와중에 감도나 프레임 같은 기술 하나는 잘 배웠다고 생각해요.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아마 한국에서 공부하고 독일에 와서 미대를 다니는 분이라면 공감하실 거예요. 사실 여기 얘들은 처음에 기술이 정말 형편없거든요. 한국에서 공부했던 제가 훨씬 많이 알고, 실력 면에서도 월등해요.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면 이게 역전돼요. 사실 기술이야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거니까, 시간이 지나면 크게 차이가 없더라고요. 오히려 더 잘하죠. 그래서 어느 순간 보면 얘네들이 가지고 있던 창의성과 향상된 기술력이 합쳐지면서 작업이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이 되어있더라고요. 기술은 반복적으로 익히고 시간을 들이는 만큼 그 실력도 비례하지만, 창의성은 그게 아니더라고요. 더욱이 한국에서의 정형화된 교육이 몸과 머리에 박혀있어서 그걸 허물기 위해서 항상 노력했던 것 같아요.

이: 앞서 인화지 이야기가 나와서 궁금한 부분인데, 인화를 비롯한 작업에 필요한 장비와 그에 따르는 비용은 개인 부담인가요? 

윤: 장비부터 인화까지 전부 개인 부담이었어요. 돈이 정말 많이 들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 돈이 너무 아까워요. 그리고 한 번은 1학년 때 제가 중형 카메라로 사진 작업을 할 일이 있어서 학교에서 빌리려고 했는데, 안 빌려주더라고요. 저보고 ‘너 몇 학년이야?’라고 묻길래 1학년이라고 답했더니, ‘1학년 주제에 무슨 중형 카메라야’라고 한마디 하고 돌려보냈어요. 학과 내부에서 각 학년에 맞는 장비만 빌릴 수 있도록 규칙이 정해져 있었던 것 같아요. 사진 장비가 대부분 고가이고, 잘 모르는 학생에게 빌려줬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결국에는 학생들에게 손해니까 충분히 이해해요. 하지만 한편으로는 사진 작업의 질적인 면을 생각한다면, 학년에 필요한 장비가 아니면 빌려주지 않는 규칙 또한 학생들에게 손해이지 않을까 싶어요.

이: 한국에서 중퇴하고서 독일에 오셨어요. 숱한 고민 끝에 오셨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곳이 아닌 독일을 선택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윤: 저희에게 정신 똑바로 차려라고 따끔하게 말씀해주셨던 교수님의 영향이 컸어요. 교수님 수업은 당시에 듣던 다른 수업과는 매우 달랐는데, 일단 책상이 없었어요. 지금 독일에서처럼 의자만 가져다 놓고서 수업했어요. 그리고 다른 수업에서 사진을 볼 때는 먼지나 지문이 묻지 않게 책상 위에 이쁘게 올려놓아야 했는데, 이 수업에서는 그냥 바닥에다가 누구 것인지 모를 정도로 사진을 흩트려 놓은 채로, 신발을 벗고 돌아다니면서 사진에 관해서 물어보고, 이야기하는 방식이었어요. 그게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독특한 수업 방식 때문에 당연히 해외에서 공부하셨을 거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까 해외에서 사진 공부를 한 적이 없으시더라고요. 쉽게 말해서 순수 국내파(?) 작가이신 거죠. 외국에서 공부했던 혹은 공부 중인 동료들의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으시고선 그걸 교육에 많이 반영하셨어요. 그러면서 저희에게 독일에서는 이렇게 공부한다더라며 가볍게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 말이 저에게는 독일에 가야겠다는 생각까지 다다를 정도로 자극적이었죠. 당시만 하더라도 독일이라는 나라는 제 머릿속에 전혀 없었고,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굉장히 낯설었어요. 그래서인지 더 궁금하더라고요. 마침 독일의 유형학 사진과 베허 학파(Becher Schule)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을 때였어요. 시기가 기가 막히게 맞물렸죠.

베허 학파(Becher Schule)의 베른트와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
베른트와 힐라 베허(Bernd and Hilla Becher)의 대표작 <Wasserturm, Dortmund-Dorstfeld> (사진 출처: 아래 표시)

이: 독일로 처음 오셨을 때도 함부르크에 계셨어요? 

윤: 처음에는 뒤셀도르프(Düsseldorf)에 있었어요. 아무래도 유형학 사진 흐름의 주요 무대였으니까요. 아. 그리고 독일에 오기 전에 잠시 호주에 있었는데, 한국이 아닌 곳에서 사진을 좀 많이 찍고 싶어서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1년 정도 있었어요. 일도 하고, 사진도 찍고, 주말에는 주로 전시회를 보면서 재밌게 지냈어요. 한 번은 어떤 주제인지, 어떤 작업인지도 모른 채로 우연히 전시장을 들렸는데, 알고 보니 독일의 유형학 사진 전시더라고요. 고맙게도 그 전시가 느슨해졌던 마음을 다시금 잡아줬죠. 이전부터 독일 유형학 사진에 흥미가 많았지만, 실제로 본 적이 없었거든요. 늘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서만 접하다가 제 눈으로 직접 보니까 너무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더욱 독일에 가고 싶어 졌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휴학한 상태였는데, 어서 중퇴하고 독일에 가야겠다고 결심했죠. 그렇게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마치고 한국에 들어갔고, 학교를 그만뒀어요. 이후에는 독일어 학원에서 독일어도 배우고, 아르바이트하면서 유학 자금을 마련했죠. 2010년 5월에 처음 독일에 왔어요. 처음은 뒤셀도르프로 왔는데, 베를린, 뮌헨, 함부르크 못지않게 대도시인 곳이다 보니, 어학 공부에 집중하기 어렵더라고요. 사람도 많고, 유혹 거리(?)도 많아서 조금은 한적한 곳으로 이사했어요. 멀리 간 건 아니고, 근처에 보훔(Bochum)이라는 도시로 갔어요. 그곳에서 1년 6개월 정도 어학 공부하면서 학교 입학을 준비했어요.

이: 학교는 함부르크만 준비하셨나요? 아무래도 유형학 사진에 관심이 많으셨으니까, 베허 학파(Becher Schule)의 발상지인 뒤셀도르프 미술 대학교(Düsseldorf Kunstakademie)를 목표로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윤: 처음에는 뒤셀도르프를 포함해서 라이프치히(Leipzig), 함부르크(Hamburg) 이렇게 세 곳 중에서 가고 싶었어요. 유형학 사진이 당시에 유행이라 뒤셀도르프는 당연히 가고 싶은 학교 중 하나였는데, 제가 하고 싶은 사진이 마냥 유형학 사진은 아닌 것 같더라고요. 라이프치히 역시 사진학이 유명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작업 방향은 찾을 수가 없었어요. 그리고 남은 한 곳인 함부르크 미대에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작가가 사진학과 교수로 있었는데, 그 사람의 작업과 그 방향이 유형학 사진보다 훨씬 매력적이었어요. 유형학 사진은 실제 존재하는 공간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 성향을 바탕에 둔 작업이지만, 토마스 데만트는 실제의 사건 혹은 사고, 역사적 이야기가 담긴 공간을 본인이 직접 실제와 일 대 일 비율로 만들어서 사진으로 기록하고, 없애버리는 방법으로 작업하거든요. 그전까지 제가 알던 사진과는 달랐고, 총체적이고 종합적인 예술이라는 느낌이 강했어요. 그래서 독일에 와서는 사실 뒤셀도르프보다 함부르크에 더 가고 싶었죠. 그래서 함부르크에 쉽게 말해서 올인(all in)했죠.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작가 (사진: David Benjamin Sherry)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작가의 작업 <Space Simulator> (사진 출처: 아래 표시)

이: 앞서 보훔(Bochum)에서 어학과 학교 입학을 준비하셨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준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윤: 우선은 뒤셀도르프와 보훔에서 어학을 공부하면서 찍은 사진, 호주에서 찍은 사진 그리고 한국에 잠시 들어갔을 때 찍었던 사진을 전부 모았어요. 그리고 이를 보는 사람이 제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를 파악할 수 있도록 서사 구조와 흐름을 고려해서 A3 종이 위에 사진을 붙였어요. 그렇게 마패(Mappe)를 만들었어요. 사진은 간단하게 컬러(color)로 인화한 사진부터 파로나마(Panorama) 방식으로 작업한 사진, 아날로그 바탕 위에 디지털 파로나마 방식을 적용한 작업 그리고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혼합한 작업까지 다양하게 준비했어요.

호주에서 작업한 사진 (사진제공: 윤혜진 작가)
호주에서 작업한 사진 훔에서 작업한 사진(오) (사진제공: 윤혜진 작가)

이: 마패(Mappe)를 구성하는 방법은 혼자서 생각한 건가요? 독일에서 미대를 준비하시는 분을 보면 입시 미술까지는 아니더라도 마패 베라퉁(Mappeberatung)이라고 해서 마패 구성에 관한 조언을 받기도 하더라고요.

윤: 네. 저는 우선 혼자서 시작했어요. 주변에서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유학원에서 준비를 하기도 하고, 말씀하신 것처럼 독일 현지에서 마패베라퉁(Mappebratung)을 받으면서 준비하더라고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혼자서 준비하다 보니까 유독 시간이 오래 걸렸던 것 같아요. 그래도 혼자 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나름 잘 준비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에는 좋은 소식을 못 받았죠. 그래도 여러 학교를 돌아다니면서 만난 다른 친구의 마패를 보면서 팁을 많이 얻을 수 있었어요. 사진이라고 해서 단순히 이미지(Image)를 통한 시각적 경험을 전달하기보다는 이야기를 전해줘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 역시 서사를 고려해서 사진을 배치했었는데, 다시 보니까 이미지를 더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었던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떨어졌던 것 같아요.

이: 함부르크 미대의 입학 과정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경험을 바탕으로 조금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윤: 저희는 한 가지 큰 특징이 있는데, 마패(Mappe)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면 실기시험 없이 곧바로 입학할 수 있어요. 그래서 점수를 철저하게 가려내는데, 크게 ‘A, B, C, D’로 나뉘어 있어요. ‘C’나 ‘D’를 받은 사람은 불합격, ‘B’를 받은 학생은 (학과마다 차이가 있지만) 실기시험을 보거나 인터뷰 면접을 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해요. 반면에 ‘A’를 받은 학생은 바로 입학할 수 있어요. 저는 아쉽게도(?) A를 받지 못해서, 인터뷰 면접을 봤어요. 그리고 여기에도 특이한 점이 하나 있는데요. 다른 지원자 한 명 혹은 두 명이 제 면접에 참관할 수 있어요. 그때 다른 사람의 작업을 볼 기회가 생기는 거죠. 최종 합격 이후에는 각 그룬트클라쎄(Grundklasse)에서 마패(Mappe)를 발표하기 때문에 결국 다 볼 수 있지만, 당시는 저도 다른 독일 친구가 면접하는 걸 지켜봤어요. (웃음)

이: 학교 측에서 지원자에게 해주는 일종의 배려(?) 같은 건가요? 

윤: 배려일 수도 있는데, 그보다는 그냥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희는 졸업 발표 및 심사를 할 때도 신청하면 참관할 수 있거든요. 심지어 그 자리에서 궁금한 점을 물어보기도 해요.

이: 그러면 참관한 학생이 던지는 질문에 관한 대답도 점수에 반영되나요?

윤: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그렇지만 저는 반영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오히려 교수들의 질문보다 학생이 던지는 질문이 더 날카롭고, 대답하기 까다로워요. 사실 졸업 시험을 치르는 당사자에게는 부담스럽지만, 참관자로서는 직접 질문하고, 답변을 들으면서 졸업 시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죠. 그렇게 보면 일종의(?) 배려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이: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처음에는 사진학과로 입학한 이후에 무대미술로 전과하셨습니다. 전공을 바꾸기 전에 경험하셨던 사진학과의 수업은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윤: 사진을 공부하기 위해서 왔는데, 사진이 아닌 정말 ‘미술’을 시작했어요. 그룬트클라세(Grundklasse, 1학년)에서 수업하면서 내가 꼭 사진만 해야 한다는 느낌을 전혀 못 받았어요. 내가 잘하고, 앞으로 더 잘하고 싶은 게 사진이니까 사진 작업을 하는 거지만, 영상, 설치, 드로잉을 해보고 싶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도록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줬어요. 어떻게 보면 그냥 방목한 거죠. 그래도 덕분에 무대미술로 옮기는 게 이상하거나 낯설지는 않았어요. 그리고 제가 처음 이 학교에 오고 싶었던 이유였던 토마스 데만트(Thomas Demand) 교수의 반(Klasse)에 들어갔어요. 잠시 그 반에 있었을 때는 철저하게 개인 작업을 하고서 2주에 한 번 교수와 반 학생이 모두 모여서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눴어요. 그게 수업이었어요. 모든 학생이 스스로가 작가라는 인식 아래에서 행동하고, 작업하는데 그런 이유에서인지 크리틱(critic)도 정말 살벌했죠.

그룬트클라쎄(Grundklasse) 당시의 (초기) 작업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이: 이야기를 들어보면 토마트 데만트(Thomas Demand) 교수의 반은 차갑고 냉정한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전과하신 무대미술에서도 비슷한 분위기였나요? 

윤: 확실히 느낌이 달랐어요. 무대미술은 개인 작업도 물론 있지만, 그룹 형식의 프로젝트 작업이 많아요. 연극(Schauspiel)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가 없잖아요. 연출가, 디자이너, 의상, 조명 등 다양한 분야가 있고,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야 해요. 한 학기를 개인 작업 중심의 분위기에 속해 있다가, 그룹 작업을 하니까 그게 또 처음에는 낯설더라고요. 그래서 더 재밌었어요. (웃음)

무대 미술(Bühnenraum)의 그룹 작업에 참여하는 학생들 모습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이: 정반대의 지점 모두를 경험하셨네요. (웃음) 그룹 형식의 프로젝트 작업이 많다고 하셨는데, 무대미술 전공 안에서 하나의 극(Drama)을 만드는 건가요? 그룹 형식의 프로젝트 작업은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윤: 무대미술 학과 안에서 룬트강(Rundgang)을 준비할 때, 그룹 작업을 자주 하는 편이죠. 그런데 그보다 함부르크 안에서 <Studienprojekt III>라고 음대와 미대를 포함한 몇몇 학교에서 연출, 연기, 극작, 무대, 의상, 조명을 전공하는 학생이 모여서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게 있어요. 학생들끼리 모여서 자체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참여 학교의 교수들이 커리큘럼을 전부 만들어 놓고, 매 학기 각 반에서 여섯 명을 뽑아서 참여할 기회를 줘요. 저희는 4학기나 5학기 이상 된 학생이 지원하고, 그중에서 교수님이 뽑아서 참여시켜요. 이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모든 학교에서 6명씩 학생이 오면, 전공 별로 한 명씩 모여서 팀을 만들어요. 그렇게 전체적으로 여섯 개의 그룹이 만들어지고, 각각 극을 하나씩 만들어요. 그리고 만들어진 여섯 편의 극은 함부르크에서 실제로 운영하는 극장(Theater)의 무대에 올라요. 이를 마지막으로 전체 프로젝트는 마무리돼요. 큰 규모의 작업이죠.

<Studienprojekt III> 참여작 중 한 작업의 트레일러 (출처: https://vimeo.com/130252805)

이: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그럼 이 프로젝트 역시 수업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윤: 일종의 수업이면서 동시에 참여 학생에게는 하나의 경력인 셈이죠.

이: 일종의 수업이라는 말은 정규 수업은 아니라는 말씀이신가요? 그렇다면 학기 중에 학교 수업도 하고, 프로젝트 작업도 함께 하나요? 

윤: 그렇죠. 학교는 철저히 수업 일정이 짜여있고, 그 수업을 들으면서 동시에 프로젝트 작업도 참여해요. 그런데 사실 프로젝트 작업이 거의 한 학기를 다 잡아먹거든요. 그런데 학기 수업까지 다 소화하려면 굉장히 힘들죠. 그래서 지원할 때 고민하는 친구들도 많아요. 그래도 한 번 참여하면, 무대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비중 있는 경력이 되니까 해 볼 만하죠. 비록 몸은 고생하겠지만, 극장에서 실습(Praktikum)이나 일(Job)을 구할 때 많이 도움이 돼요.

이: 프로젝트 작업으로 다른 학생들과 함께 하나의 극을 만든다고 하셨는데, 어떤 과정을 통해 극이 완성되는지 궁금합니다. 

윤: 요새 한국에서 유행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같은 형식으로 처음에 팀 구성을 시작해요. 개인적으로 이 과정이 가장 신선하고 재밌었어요. 교수들과 모든 학생 앞에서 제가 작업했던 무대 디자인을 발표하는데, 다른 포지션의 친구들은 이를 보고서 같이 작업을 하면 좋을지 혹은 작업 성향이 잘 맞는지를 고려해서 차후에 선택할 수 있어요. 무대 미술뿐만이 아니라 의상을 전공하는 친구도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고, 연출 전공 역시 이전에 했던 작업을 영상으로 보여줘요. 무대와 의상을 공부하는 저희를 대상으로 자신의 작업 성향을 어필하는 거죠. 저희 역시 심사숙고해서 연출가를 선택해요. 아무래도 작업의 성향이나 취향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서 작업해야지 마무리까지 환상의 호흡을 유지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구성된 팀은 매주 두 번 이상 모여서 시나리오를 분석하고, 재해석하는 작업을 해요. 각자의 위치가 다른 만큼 끊임없이 작업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고, 흩어진 의견을 하나로 모아요. 어느 정도 윤곽이 나오면 이제 각자 작업을 시작하는데, 무대를 전공하는 저의 경우에는 모델 바우(Modellbau)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하죠. 각자의 역할과 위치에서 진행한 작업은 프로젝트 담당 교수들 앞에서 발표하고, 크리틱을 받아요. 이후에 두 달 넘게 수정 작업을 반복하면서 마지막에는 극으로 만들어내는 거죠. 최종 마무리는 극장의 무대를 빌려서 팀별로 시간을 정하고, 배우들과 호흡을 맞춰가면서 무대에 극을 올리면 프로젝트가 끝나요. 프로젝트의 모든 과정에서 체력과 정신이 지칠 대로 지쳐버리는데, 그래도 그만큼 많이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Studienprojekt III 참여작 <Snowflake>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이: 팀 안에서 서로가 돋보이기 위한 경쟁이라든지, 의사소통이 잘 안 되어서 빚는 갈등도 있나요? 

윤: 팀을 구성하는 첫 단계부터 삐거덕거려요. 경쟁하라고 밀어붙이는 것도 아닌데, 하다 보면 서로서로 의식해서 경쟁이 심해져요. 그리고 팀 안에서도 작업하면서 맞지 않는 파트너가 있기 마련이니까, 그런 경우에는 팀을 바꾸기도 해요. 어떻게 보면 울며 겨자 먹기로 끝까지 지내는 거죠. 게다가 독일 애들도 경쟁심이 장난 아니라서 의견을 모으는 과정이 험난했어요. 특히 시나리오 해석에 있어서 의견 충돌이 많았죠. 저는 아무래도 외국인이다 보니까 난해한 표현을 완전히 이해하기 힘든 부분이 있었고, 얘네들도 시나리오 해석 못 할 때가 많아서 계속 다른 의견이 충돌했었어요. 그런데 이 과정 또한 작업 일부라고 생각해요. 특히 공연 분야에서는 서로 간의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계속 대화하면서 엉켜있는 답을 풀어나가는 거죠. 팀워크가 좋으면 좋을수록 작업에 긍정적으로 반영되는 건 만국 공통인 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작업하면서 의견 충돌과 조율 과정을 먼저 경험한 덕분에 필드(Field)에서 비슷한 상황에 부닥쳤을 때, 정신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이: 최종적으로는 극장의 무대에 극이 올라간다고 하셨는데, 몇 달 동안 극장의 프로그램으로 올라가는 건가요?

윤: 아주 짧아요. 길어봤자 5일 정도? 보통은 하루에 한 편씩 올렸어요. 시간이 안 맞아서 못 보면 이제 영영 볼 수 없는 거죠. (웃음) 그래서 그 기회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많이 찾아오더라고요. 극이 올라가는 극장을 몇십 년째 찾는 관객도 와서 보고, 일반 관객들도 많이 왔어요. 사실 이 부분은 제가 독일에 와서 매번 놀라는 점이기도 해요. 한국에서는 사실 학생들이 뭐 했다고 하면, 그냥 저희끼리 하는 파티로 시작해서 끝나잖아요. 제가 보기에는 학교 룬트강(Rundgang)도 그렇고 프로젝트로 만든 극을 올리는 것도 그렇고 홍보를 많이 안 하는 것 같은데, 외부 관객이 찾아와서 보는 점이 항상 신기해요.

이: 멍청한 질문입니다만 실제로 극장에 올리는 극이면 이를 보러 온 관객한테서 공연비도 받겠네요? 

윤: 네. 당연히 받아요. 표가 그렇게 비싼 건 아니지만, 그 수익이 모여서 저희가 썼던 제작비를 메꾸는 거죠.

이: 처음에 제작비가 따로 안 나오나요? 

윤: 극장에서 어느 정도 나와요. 이번에 제작비로 이만큼 쓰이는데, 이에 맞춰서 저희가 재정 활용을 잘 하려고 노력하죠. 만약에 초과하면, 입장료 수익으로 부족한 걸 채우기도 하는데 가능하면 연출, 의상, 조명 감독과 상의해서 어떻게든 맞추려고 해요. 처음에는 그 과정 자체가 굉장히 낯선데, 나중에 필드(Field)에서 실습할 때 확실히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 어떤 점에서 도움이 되는 것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해주시자면?

윤: 어떤 식으로 돈을 분배하고, 관리하는지 그리고 얼마 썼는지 적힌 영수증을 모으고 기록하는 것 모두 실제로 하는 일이더라고요. 그리고 한정된 제작비 안에서 투자한 돈 이상의 가치를 무대 위에서 보여 줘야 하는 게 또 다르게 맡은 역할이더라고요. 그리고 그런 면이 프로다운 면이기도 하고요.

 아, 그리고 프로젝트를 하면서 연출가랑 어떻게 말싸움을 잘 할 것인지를 배우기도 해요. 한쪽 이야기를 다 들어주다 보면 제 무대의 색깔이 없어지는데, 거기서 오는 회의감이 크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어떻게 나의 무대를 지킬 수 있는지 이런 걸 배우는 거죠. 그러면서도 극 하나를 만들 때 모든 분야가 서로 융합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옆에서 지도교수가 항상 상기시켜줘요. 자기 색깔을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서로 대화해서 하나의 극을 완성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이런 경험이 현장에 나갔을 때 현실적으로 많은 도움이 되더라고요.

이: 나중에 극장에서 실습하거나 일하는 걸 고려한다면 몸은 힘들어도 프로젝트 작업이 정말 좋은 기회임은 틀림없어 보이네요. 

윤: 그렇죠. 학교에서 무대미술을 공부한다지만, 막상 현장에 나가면 당황하잖아요. 학생들끼리 하는 프로젝트라도 참여해서 어떻게 작업이 흘러가는지 미리 알고 일을 하는 것과 경험해보지 않은 것과는 큰 차이가 있죠.

이: 혜진 씨 역시 이 프로젝트를 발판 삼아서 실습(Praktikum)을 하셨던 건가요? 

윤: 저도 프로젝트를 한 이후에서야 극장에서 실습할 수 있었어요. 졸업이 얼마 안 남았을 때 교수님이 경력 차원에서 권유하셨기도 했고, 저도 이제는 필드(Field)에서 작업을 경험해보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고요.

 그전에 무대에 관한 경험이 전혀 없는 상태로 극장에 지원하면서 가장 뼈저리게 느낀 건 열정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거였어요. 내가 단순히 극장을 좋아하고 무대를 공부하기 때문에라는 이유는 정말 씨알도 안 먹히더라고요. 독일은 경력을 굉장히 많이 봐요. 해당 분야에서 사소한 경험도 전혀 없는 상태에서 지원하면 경계를 많이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미안한데, 너무 경험이 없다. 그래서 우리와 함께할 수 없을 것 같다’라는 답변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앞서 말한 프로젝트에 참여해서 나름의 포트폴리오를 만들었어요. 그렇게라도 해야지 실습을 할 수 있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경력을 쌓아야지 나중에 현장에서 일할 수 있어요.

이: 해당 분야의 경험과 경력이 중요한 건 당연한 이야기 아닐까요. 이 지점에서 한 가지 궁금한 점은 한국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경험과 경력 이전에 학력을 많이 보는 경향이 있는데, 독일에서도 학력이 중요한가요?

윤: 제 경험상 학력은 잘 안 보는 것 같아요. 사실 한국처럼 대학 서열이 있지 않으니까. 대신에 경험의 여부를 중요하게 생각하죠. 저는 베를린에 있는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에서 3개월 간 인턴을 했는데요. 지원 과정에서 어느 학교에서 공부하는지는 보지 않았고, 졸업을 바로 앞두고 있는지만 물어보더라고요. 다행히 저는 그때 졸업을 생각하지 않고 있어서 괜찮았죠. 그리고 굉장히 운이 좋게도 한국 프로젝트 진행과 맞물렸어요. 한국과 독일의 연출가, 극작가, 무대 디자이너 그리고 배우들이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독일에서 공연하고서 한국에 가서 함께 무대를 올렸어요.

<벽 – 이방인 이피게니에> 연극 포스터 (출처: https://www.facebook.com/events/1206973969344281/)

이: 어떤 공연이었는지 궁금한데요. 간단하게라도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윤: 한국과 독일에서 공동으로 제작한 <벽 – 이방인 이피게니에>라는 연극이었는데요. 2013년부터 진행된 프로젝트예요. 저는 말 그대로 죄송할 만큼 운이 좋아서 좋은 팀에 합류할 수 있었어요. 한국과 독일에서 난다 긴다 하는 연출가 다섯 분이 기획과 연출을 맡았고, 독일 연출가 1명, 독일 무대 디자이너 1명, 독일 극작가 2명이 함께 진행했어요. 배우들 역시 한국 배우와 독일 배우가 함께했어요.

작업 회의를 하는 모습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벽 – 이방인 이피게니에>는 역사적으로 비슷한 분모를 갖춘 한국의 분단 역사와 독일의 통일 과정을 요한 볼프강 폰 괴테의 희곡 <이피게니에>에 접목해서 재해석한 작품이에요. 초연은 광주의 국립 아시아 문화전당(ACC)에서 올렸고, 이후에 독일 베를린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에서 공연했어요.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무대를 올렸던 특별한 경험이었죠. 그래서 저한테는 의미가 남달랐던 공연이었어요. 그리고 준비 과정에서 서로 의사소통이 힘들었지만, 끝까지 열정적으로 작업에 임했던 모습이 기억에 많이 남아있어요.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 무대에 오른 <Walls – Iphigenia in Exile> (사진: Arno Declair)
도이체스 테아터(Deutsches Theater) 무대에 오른 <Walls – Iphigenia in Exile>  (사진: Arno Declair)

이: 베를린에서 했던 공연인데 못 봐서 아쉽네요. 다음에 혹시나 베를린에서 올리는 작업에 참여하시면 꼭 알려주세요. (웃음) 그리고 위에서 잠시 룬트강(Rundgang)에 관해서 짧게 언급하면서 주로 그룹을 한다고 하셨는데, 모든 학생이 그룹 작업에 의무적으로 참여해야 하나요? 아니면 개인 작업을 하기도 하나요? 

윤: 의무적으로 그럴 필요는 없어요. 저희 반에서 그룹 작업을 할 때는, 한 학기의 주제를 정해요. 예를 들어서, 이번에는 관객이 말 그대로 극장에 와서 연극을 보고 가는 느낌으로 구성해보자. 꼭 한 단어로 떨어질 필요는 없어요. 추상적인 느낌을 콘셉트로 잡기도 하죠. 지난 룬트강에서는 관객이 연극을 보고 가는 느낌으로 작업했어요. 오후 1시부터 2시까지는 어떤 작업, 그리고 2시부터 3시까지는 다른 작업을 볼 수 있는 형식으로 공연 시간이 정해진 연극처럼 작업마다 관람 가능 시간을 정해서 보여줬어요. 그리고 그룹 작업에 참여할 시간이 없거나 개인 작업을 보여주고 싶은 사람은 그냥 그렇게 참여해요.

이: 한 학기의 주제는 어떻게 결정되는지 궁금한데요. 모든 학생이 모여서 각자의 생각을 이야기하고 하나로 수렴하나요?

윤: 보통은 몇 명의 학생들이 주도해요. 물론 그런 모습을 싫어하는 친구들도 있죠. 그 친구들은 참여하지 않기도 해요. 뭐, 의무는 아니니까요. 그러면 그냥 개인 작업을 보여주는 거죠. 저도 재밌는 주제가 있으면 그룹 작업에 참여하지만, 재미없거나 너무 바쁘면 개인 작업을 보여주기도 했어요.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그룹 작업은 각자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아무래도 리드하는 친구의 의견이 많이 반영되죠. 그러면 같이 작업한다기보다 내가 이 친구의 작업을 도와주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이: 학교에서 작업 환경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무대를 많이 보고 경험하는 게 특히 중요할 것 같은데, 현장학습(Exkursion)은 주로 어디로 가나요? 

윤: 저희는 항상 무대 관련한 곳으로 가죠. 제가 학교 다닐 때는 카를스루에(Karlsruhe), 벨기에(Belgium), 바젤(Basel), 취리히(Zürich), 베를린(Berlin)처럼 무대 미술로 유명한 곳을 갔어요. 학과에서는 공연 예술이 유명한 곳을 간다면, 이론 수업에서는 시각 예술 전시를 보러 가기도 해요.

현장학습(Exkursion) 모습 (사진제공: 윤혜진 작가)

이: 이론 수업에서는 주로 현대 미술 관련 전시를 보나요?

윤: 네. 최근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 카셀 도큐멘타(Kassel documenta), 뮌스터 조각프로젝트(Münster Skulptur Projekt)는 저희 클라쎄(Klasse)에서도 갔는데, 저는 아쉽게도 못 갔어요. 학교에서 지원을 조금 받아서 큰 부담 없이 다녀왔다고 하더라고요.

이: 앞서 이야기했던 학교 간의 프로젝트 작업이나 룬트강(Rundgang) 말고도 학생들끼리 모여서 외부에 작업을 보여주기도 하나요? 

윤: 글쎄요. 저는 외부라기보다는 학교 영화과 친구들과 프로젝트 작업을 같이하곤 했어요. 영화 작업에 참여해서 세트를 디자인하고 만드는 미술팀으로 참여했어요. 그리고 그 작업을 상영하는 것까지 함께했죠.

이: 최근 발행한 인터뷰에서 졸업 이후에 자신이 어떤 교수의 반에서 공부했는지가 필드에서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잠깐 있었습니다. 얼마 전 졸업하셔서 아직 크게 실감 못 하셨을 수도 있겠지만, 졸업자로서 이 점에 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윤: 네. 확실히 있어요. 없다면 거짓말인 것 같아요. 제 담당 교수님도 필드에서 여전히 활발히 활동하시고 좋은 평가가 많아서, 제가 극장에서 일하려고 했을 때 교수님의 네임 파워가 분명히 작용해요. 그런데 졸업 이후에는 사실 그렇게 오래가지 못하는 것 같아요. 졸업하고서는 어차피 내 작업을 해야 하니까, 언제까지 교수 이름 아래에서 숨어있을 수 없죠. 저는 오히려 학교에 다닐 때 그 영향력이 더 크다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어느 교수의 반에서 공부하는 학생이 극장의 인턴을 지원했을 때나 장학금을 신청할 때, 교수의 영향력이 꽤 작용하는 것 같더라고요.

이: 네임 파워가 학생의 활동에 영향을 주지만, 필드에서는 결국 스스로가 살아남아야 한다는 말씀이시군요. 사실 졸업하신 분은 처음으로 인터뷰하는데, 졸업자에게만 할 수 있는(?) 질문이 있습니다. 처음 학교에 입학하셨을 때와 졸업한 지금 어떤 점이 스스로 달라졌는지 궁금합니다. 

윤: 처음 입학해서는 제가 상상하지 못했던 교육과정이라서 한 번 무너졌었고, 그게 너무 힘들어서 바로 정신을 못 차렸던 것 같아요. 더욱이 어떤 작업을 해야 한다고 정해져 있지 않고, 아무거나 예술로 만들어보라고 방목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도 모르겠고, 없다고 느꼈었죠. 독일 친구들처럼 나도 유창하게 크리틱도 하고, 작업에 관해서 가지고 있는 생각도 이야기하고 싶은데 그게 안 되니까 막막하고, 짜증 나고, 화나고 그러다가 위축되는 과정이 계속 반복되면서 많이 힘들었죠. 감사하게도 그룬트클라쎄(Grundklassse, 1학년) 교수님이 저를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수업하다 보면 서로 이야기하다가 감정이 격해져서 말도 빨라지고, 목소리도 높아지거든요. 그럴 때마다 교수님이 중간에 끊고선 ‘그렇게 이야기하면 혜진이가 못 알아듣는다’라면서 조율해주셨죠. 많이 배려해주셨어요.

 학교를 들어가기 전만 하더라도 내가 여기서 얼마나 많이 얻어갈지 그리고 작업이 얼마나 더 성숙 해질지를 기대했는데, 그건 전부 욕심이었어요. 그보다 내가 이 안에서 얼마나 융합을 잘하고, 살아남을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했던 것 같아요. 특히 1·2학기 동안은 같은 반 친구의 말을 알아듣고 이해해서 웃을 수도 있고 혹은 화를 낼 수도 있는 수준의 의사소통 능력을 갖추는 게 작업보다 더욱 큰 과제였죠. 그래도 힘들게 1년을 보내니까 스스로가 환경에 적응하더라고요. 원하는 전공과 교수의 반에도 들어갔고 사실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막상 들어가니까 또 다르더라고요. 정말 다양한 분야와 장르를 다루던 얘들과 함께하면서 시너지 효과도 있었는데, 거기서 오는 회의감도 컸어요. 너무 다양하고 생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접근하는 작업을 보니까, 오랫동안 사진만 붙잡고 있던 게 후회되기도 하고, 표현의 한계에서 못 벗어나는 모습에 스스로 화가 많이 났었어요. 우물 안의 개구리였던 거죠. 문제는 제가 어떤 주제로 작업을 하더라도 사진이라는 매체와 장르만 생각한다는 거였어요. 예를 들어서 ‘결핍’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하면, 저는 오로지 사진으로 이걸 어떻게 풀지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사실 굳이 사진이 아니더라도 표현하는 방법은 정말 많잖아요.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달았어요. 그때부터 그림도 그려보고, 영상도 찍어보고 심지어 사운드도 만들어봤어요. 매체의 한계에서 벗어났죠. 독일에서 공부하면서 겪은 가장 큰 변화는 사진만 해야 한다는 마음가짐이 이제는 사진도 할 수 있다고 바뀐 거죠.

 사실, 한국에서 이러면 다른 짓 한다고 욕먹잖아요. 그런데 독일은 다른 짓을 해도 용납이 되니까, 그래서 사진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작업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던 것 같아요. 뭐, 용납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권장한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요. (웃음) 그런 환경 덕분에 어쩌면 무대 미술로 자연스럽게 스며들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싶어요.

이: 함부르크에서 고생하면서 공부한 시간이 짧지 않은 만큼 많은 변화도 있었네요. 앞으로 공부는 계속하실 계획인가요? 

윤: 글쎄요. 아직 전혀 계획이 없어요. 졸업 시험 때도 같은 질문을 받았는데, 함부르크가 아닌 다른 곳을 가보고 싶긴 해요. 지금으로서는 베를린이 유력한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웃음) 무대 미술에서도 조금 더 세분화해서 공부든 일이든 하고 싶어요. 사실 아직 제 미래가 어떻게 흘러갈지 불확실해서 말씀드리기 어렵지만, 어쨌든 무대와 관련해서 작업하고 경력을 쌓고 싶어요.

이: 함부르크는 이제 너무 지겨워지신 건가요? (웃음) 마침 도시 이야기가 나와서 질문드리면 좋을 것 같은데, 무대 미술을 전공하시면서 살펴본 함부르크의 극장 인프라는 어떤가요? 좋은 편인지?

윤: 아무래도 베를린보다 극장 수는 적은 편이에요. 베를린은 규모가 큰 극장이 많다면, 함부르크는 소규모 극장이 동네마다 이곳저곳에 많이 있어요. 그래서 그런지 꽤 많은 수의 공연이 무대에 올라요. 그리고 저도 무대 미술 역사를 공부하면서 알게 된 건데, 함부르크가 연극과 뮤지컬로 유명한 도시더라고요. 함부르크의 극장 무대 역사에 관한 책이 따로 있을 정도예요. 실제로 그 책으로 수업도 해요. 그리고 극장과 연극 관련한 축제도 많이 하는 편인 것 같아요. 확실히 공연 예술 방면으로는 활발한 도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함부르크의 유명 연극 축제 중 하나인 <Theater der Welt> 

이: 함부르크 미대의 무대미술을 졸업하고서는 주로 함부르크에 머무르며 극장에서 일하는 편인가요? 

윤: 그렇죠. 졸업 이후에 함부르크에 많이 남아있어요. 앞서 말한 것처럼 극장의 역사가 깊잖아요. 도이체스 샤우슈필하우스(Deutsches Schauspielhaus)라던지 탈리아 테아터(Thaliatheater)는 독일의 연극계 안에서 웬만한 연출, 배우, 무대 미술가들이 한 번씩 거쳐 갔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유명한 곳이죠. 그래서 다들 졸업 이후에 가능하면 남아서 극장에서 일하려고 해요. 게다가 함부르크 안에서 무대 미술 전공은 우리 학교밖에 없으니까, 클라쎄(Klasse) 안에서 경쟁이 심한 편이죠. 그래서 노련하게 경쟁을 피해서 다른 도시로 가는 친구도 있어요.

탈리아 테아터(Thaila Theater) 모습 (사진: Armin Smailovic)

이: 그렇군요. 저희가 함부르크(Hamburg)라는 도시를 중심으로 계속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학교나 전공에 관련한 이야기와는 별개로 이곳에서 생활하는 건 어떤지도 궁금해요. 예를 들면 집세나 생활비는 스스로 감당할만한지? 

윤: 어쩌면 함부르크 학교를 준비하거나, 공부를 준비하는 분들에게 가장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네요. 그런데 함부르크는 프랑크푸르트(Frankfurt am Main) 못지않은 상업·물류 중심 도시라서 전체적으로 집값이 비싸요. 기숙사도 다른 도시보다 비싼 것 같아요. 전에 제가 보훔(Bochum)에 있을 때는 200유로 안팎이었는데, 함부르크에서는 두 배 정도 비싸더라고요. 최근에는 아마 더 많이 올랐을 거예요. 주변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니까 터무니없이 비싼 돈을 내면서 지내더라고요. 스스로 부담하기에는 버겁죠.

이: 베를린도 전보다 집값이 너무 올라서 버겁다는 말씀에 공감이 가네요. 실례되는 질문일 수도 있지만, 생활비 유지는 어떻게 하셨는지도 궁금해요. 

윤: 처음에는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더라고요. 아무래도 비자를 받는 과정에서 재정을 증명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그리고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학기 중에 아르바이트를 거의 못 했어요. 특히, 학교 처음 들어갔을 때는 일하면서 공부하는 건 사치였던 것 같아요. 오히려 학교생활을 망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방학 때만 일을 구했어요. 다행히도 함부르크가 항만물류도시라서 그에 관련한 일을 단기로 많이 했었죠. 그렇게 돈을 모아서 학기 중에 쓰고, 방학 때 다시 또 일해서 모으면서 지냈어요. 아무래도 학생비자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법적 한계가 있으니까, 딱 그 정도로만 일했어요.

이: 유학 생활이라는 게 다들 비슷비슷한가 봐요. 마치 제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묘하네요. 특히 학교에 다니면서 일한다는 건,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보다 전부 다 놓치는 일이라는 말에서 고개를 절로 끄덕였어요. (웃음) 독일에서 외국인(Ausländer)이라는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맞닥뜨린 경험도 비슷할 것 같은데, 어려운 점은 없으셨어요?

윤: 사실 저는 이미 그 부분에 있어서 해탈 한 사람이에요. 비자(Visum) 인생이라는 점이 많이 불편하고 어렵죠. 제출 서류도 많고, 어쨌든 혼자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부분도 있더라고요. 보란 듯이 스스로 다 해결하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부모님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러면서 느끼는 미안한 감정과 아직 이곳(독일)에 소속되지 못한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오는 소외감은 외국인 신분이기에 겪는 경험이지 않을까 싶네요.

그리고 독일 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그들이 나에게 던지는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했고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를 의식하면서 지냈어요. 전에 한 번 독일 친구가 진지하게 물어본 질문이 하나 있는데요. 네가 여기서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고, 문화도 너무 다른데 이곳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고, 배워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지를 물어보더라고요. 아. 이렇게 말하면 그 친구가 너무 쏘아붙인 것처럼 보일 수 있는데, 사실 술 마시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했던 거예요. 아무튼, 그 친구가 하는 말이 자기가 만약에 아시아(Asia)로 유학을 갔고, 한국 사람들이랑 대화하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 못 하고, 다르게 해석되면 엄청 억울할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제가 어떻게 그런 걸 견디고 버티는지 궁금해하더라고요. 그 자리에서는 그냥 결국 시간이 흐르면서 어느 날 보니까 자연스럽게 버티고 있었다고 대답했는데, 사실 저도 너무 힘들었죠. 여기까지 와서 내가 얻는 게 도대체 무엇일지 항상 의문이었어요.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달랑 졸업장 하나 따는 정도라면, 나한테 남는 건 도대체 무엇일지…. 고작 이력서에 학교 이름 한 줄 쓰려고 내가 여기까지 온 건 아니라는 생각을 매일 했죠. 그게 너무 힘들어서 그만두고 돌아가고 싶었던 적이 정말 너무 많았어요. 그래도 어떻게든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고 마음을 잡고, 말이 통하지 않아서 창피당하더라도 많이 이야기하고, 듣고, 정 안되면 눈치껏 잘 파악해야지 하며 마냥 버텼던 것 같아요. 정말 매일매일 독일어에 치여서 토할 것 같았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조금씩 익숙해지고 버틸만하더라고요.

학교에 적응(?)한 모습 (사진 제공: 윤혜진 작가)

 그런데 제가 마냥 스스로 잘 버텼다기보다 감사하게도 주변 환경이 잘 따라줬다고 생각해요. 사실, 학교에 독일 친구만 있는 게 아니거든요. 독일인이지만 뮌헨(München)에서 함부르크에 온 친구도 있고, 스위스, 스웨덴, 이탈리아, 스페인, 일본, 중국 등의 다양한 국적을 가진 친구들이 함께 있었어요. 그런 환경을 생각해보니, 결코 나 혼자만이 이방인이 아니더라고요. 나만 낯선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면서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처음에 말씀하실 때만 하더라도 사실 저는 굳이 왜 우리는 버티면서까지 이 낯선 곳에 있어야 하는 거냐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힘들어서 다시 돌아가더라도 뭐라고 할 사람이 과연 누가 있을까 하는 약간의 반발심과 안쓰러움 등의 감정이 들었는데,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각자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하나의 지점으로 왔다는 사실과 환경 덕분에 잘 지낼 수 있었다는 말을 들으면서 저도 약간 위로를 받는 느낌이네요.

윤: 네. 저한테도 그 사실이 위로 아닌 위로였던 것 같아요. 서로 다른 언어와 악센트를 가진 사람들이 둘러앉아서 하나의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서로 다른 의견과 생각을 나누고 그 과정에서 격해졌던 감정은 술 한잔과 함께 털어내면서 다들 힘들지만 잘 버틴 것 같아요. 저희는 또 무대미술 전공이다 보니 극장에 가서 극이나 오페라를 함께 보고 이야기도 많이 나눴는데, 다른 문화와 사회의 배경에서 바라보는 관점을 경험하는 게 정말 재밌었어요.

이: 다국적, 다문화라는 배경이 미술 대학교 안에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있고, 그 안에서 함께 이야기 나누고 작업할 수 있어서 오늘날 미술에서 독일이 유독 강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인터뷰의 마지막으로 해오셨던 작업에 관해서 듣고 싶은데, 간단하게 설명 부탁드립니다. 

윤: 저는 사회·정치적 주제를 작업 안에 넣고서 빙빙 돌려 비꼬아 말하는 걸 좋아해요. 이번 졸업 작업도 말하자면 그런 구성이었죠. 관객이 작업 안에서 제가 무슨 화두를 던지는지 파악하기 어려운 구조의 작업이에요.

 두 개의 공간 안에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규격의 계단을 만들었어요. 일자형 계단이 아닌 근육을 비튼다고 할 정도로 뒤틀림이 강해서 올라가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운 계단을 벽에 붙였어요. 단순히 계단과 벽의 면과 면을 붙이지는 않았는데, 그 사이에 일종의 속임수로 바퀴가 숨어있어요. 그래서 계단을 오르려고 아무리 노력해도 못 올라가는 구조였죠. 전체 공간은 어둡고, 그 어둠을 밝히는 전구가 하나 있어요. 제가 직접 사운드 작업을 한 지지직거리는 소리를 전구 안에 넣었는데, 계속 지지직거리면서 전구가 죽어가던 거죠. 관객은 어둡고 비좁은 공간 속에 오를 수 없는 계단과 이상한 소리가 나는 전구가 있는 풍경을 접하는데, 이를 마주한 관객은 전구를 끄든지 혹은 새로 갈든지 어떤 행동이라도 취해야 한다는 걸 인지할 수 있어요.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계단을 올라야 한다는 걸 파악하죠. 하지만 전구를 끄기 위해서 계단에 오르는 순간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오브제가 본래의 기능을 상실했다는 걸 깨닫는데, 관객의 시선에서는 볼 수 없는 계단 뒤의 바퀴가 오브제가 기능을 못 하도록 끊임없이 원인을 제공하는 거죠.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지하는 것에 다다르죠.

 이 작업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어요. 하나는 사물과 디자인의 기능성에 관한 비평이고, 다른 하나는 지난 세월호 사건 속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력과 국민으로서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던 저의 경험이자 무기력함이에요. 처음 작업을 접하면 어떤 내용인지 파악할 수 없게끔 그 의도를 철저히 감춘 채로 서사를 진행하고, 중간중간 어떤 대상을 비꼬고 있다는 걸 시사하는 방식으로 계속 작업해왔어요.

이: 관객이 간접적으로 그리고 우회적으로 습득한 파편적 정보와 나름의 기대감이 어느 순간 무너지는 느낌인데요. 이를 무대 미술의 작업으로 풀어내기는 정말 어려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 질문으로 앞으로의 계획이 궁금합니다. 

윤: 현재로서는 휴식이 필요해요. 졸업에 너무 많은 힘을 쏟아서 많이 지쳤어요. 우선은 쉬고 싶네요. 충분히 시간을 가지면서 앞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할 것인지 천천히 고민해봐야죠. (웃음)

이: 개인적으로는 베를린에서 또 마주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웃음) 오늘 인터뷰에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윤: 긴 이야기 들어주시느라 수고 많으셨어요.


<필자 주>

1) 윤혜진 작가의 말에 따르면 최근에는 함부르크 미술 대학교 지원 시에 A부터 E까지 나온다고 한다. 더불어 불합격자에게는 왜 떨어졌는지 자세한 이유를 첨부해서 편지로 보낸다고 하니 마음 단단히 먹자.

2) <Studienprojekt III> 작업은 사진 및 영상 자료를 구하기 너무 어려웠다. 참고해서 봐주시길..!

3) 그리고 최근 윤혜진 작가는 건축 및 전시 공간을 다루는 <jangled nerves gmbh> 스튜디오에 들어갔다. 축하드려요!!


<사진 출처>

1) “Bernd und Hilla Becher. Festschrift”, hg. v. S. Lange, München 2002, S. 114

2) Colomina, Beatriz, Demand, Thomas, Kluge, Alexander, ThomasDemand, München 2006, S. 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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