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인터뷰] 스크린에 담은 현실과 사회

<Inland Sea>의 감독 카즈히로 소다(Kazuhiro Soda) (사진: 이정훈)

 

<Minatomachi(Inland Sea)> 다큐멘터리 영화감독 카즈히로 소다(Kazuhiro Soda)

Q. 10일 동안 진행 될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서 작업을 보여주게 됐다. 영화감독으로서 많이 설렐 것 같다.

A. 사실 베를린 국제 영화제는 내 영화 커리어에서 매우 중요하다. 인연도 있다. 첫 영화 <캠페인>을 만들고서 수 많은 영화제에 지원했지만, 줄줄이 거절당했었다. 내 영화는 세상 사람들과 영원히 만나지 못할 거라고 낙담하던 찰나에 베를린 국제 영화제의 포럼 섹션에서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나의 첫 영화는 베를린날레라는 무대에서 세상에 선보여졌다. 첫번째 작품이 초대 받았던 포럼(Forum)에서 다시금 초대받아서 그런지 초심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Q.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유독 애정이 깊은건가?

A. 베를린 국제 영화제가 없었다면 필름메이커(Filmmaker)로서의 지금 모습을 전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매우 특별한 영화제라고 생각한다. 또한, 전 세계의 사람들이 영화를 보기 위해서, 이야기 나누기 위해서 그리고 생각을 교류하기 위해서 모이는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그 중요성을 깨닫는다. 오늘 인터뷰도 이러한 모습들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Q. 간단하게 작업 소개를 부탁한다. 어떤 영화인가? 

A. 요약하기가 쉽지 않지만, 말하자면 일본의 우시마도(Ushimado)라는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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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land Sea> (사진: © 2018 Laboratory X, Inc)

Q. 어떤 계기로 이 영화를 만들게 됐는지도 궁금하다. 

A. 함께 일하는 프로듀서인 키요코(Kiyoko Kashiwagi)와 우시마도에서 종종 휴가를 보내곤 했는데, 우연히 현지에서 활동하는 어부를 알게됐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마을의 모든 어부가 고령이었고, 그들을 이을 후계가 없었다. 얼마 가지 않아 마을에서 어부가 사라질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이는 곧 일본 사회 전체가 맞이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카메라를 들고서 다시 우시마도에 돌아왔고,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기록했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이 곳에 관한 다큐멘터리를 찍지 않으면, 다시는 기회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사실 조금 급한 마음이었다. 이 마을의 커뮤니티와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타임캡슐처럼 다큐멘터리 영화 안에 보존하고 싶었다.

<Inland Sea> (사진: © 2018 Laboratory X, Inc)

Q. 왜 우시마도(Ushimado)라는 마을을 선택했는지 궁금하다. 비슷한 현실에 처한 다른 곳도 많을건데, 왜 이곳을 주목했는지? 

A. 우시마도는 키요코 프로듀서 어머니의 고향이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이 곳은 자동차 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마을이다. 모든 건물과 길은 자동차를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그런 환경 속에서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 커뮤니티가 형성되었다. 이러한 사회와 지난 역사가 마을 안에 고스란히 보존되어있는 느낌이었다.

Q. 영화 속에서 우시마도의 모습을 통해서 일본 사회 전체의 고령화 문제에 관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다. 

A. 그들의 삶과 일하는 모습 속에서 그러한 사회적 이슈를 살펴볼 수 있다. 하지만 영화의 주제로서 그 이야기를 내세운 건 아니다. 배경으로서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는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영화 속에서 단지 인물을 바라보고, 관찰하고, 기록하는 게 전부이고, 그렇기에 내 작업에서는 사회적 이슈가 우선시되지 않는다.

Q. 그럼에도 작업이 사회적 문제에 관한 논의에 맞닿아 있는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영화를 통해서 현실을 보여주는 것에 그치는데 만족하는건가? 

A. 나는 필름메이커(Filmmaker)이다. 거기까지이다. 내가 할 일은 앞에 놓인 현실을 카메라에 담아서 보여주는거다. 내 영화를 사회운동에 이용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영화를 이용할지 혹은 단순히 보는 걸로 그칠지는 보는 이들에게 달려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영화는 그냥 영화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영화를 찍겠다고는 전혀 생각해본 적 없다.

물론, 개인으로서 그리고 한 명의 시민으로서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한 발언을 적극적으로 한다. 그 발화가 사람들을 변화시키기를 희망한다. 나는 매우 정치적인 사람이고, 그런 면에서 꽤 활발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이 내가 영화를 정치적인 이유에서 만든다고 오해를 하곤 한다. 전혀 아니다. 그냥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모든 영화는 정치적으로 읽힐 수 있다. 하지만 감독으로서 영화를 통해서 정치적인 스탠스(stance)를 가지는 건 아니다.

<Inland Sea> (사진: © 2018 Laboratory X, Inc)

Q. 영화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서, 흑백으로 촬영한 이유가 궁금하다. 

A. 이는 거의 마지막에 결정한거다. 처음에는 영화를 컬러 버전으로 마무리했다. 처음 영화 제목이 <Inlandsea Twilight> 이었는데, 마을과 그곳 사람들의 황혼의 시간을 다루고 있었기에 황혼의 장면에 중요한 의미가 많았다. 그래서 색 보정 작업을 하면서도 이 마법의 시간을 묘사하기 위해서 고민이 많았다. 그런데 제목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이에 관해서 키요코 피디와 이야기했고, 컬러 대신 흑백으로 바꾸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사실 영화 요소로서 컬러는 매우 중요했기에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지만, 한 번 어떨지 살펴보기로 했다. 오늘날 기술의 발전 덕분에 버튼 하나만 누르면 흑백으로 편집을 볼 수 있었다. 흑백이 마음에 쏙 들었다. 그리고 황혼이라는 말을 제목에서 빼내자 모든 영화가 완벽해 진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흑백과 제목이 결정된거다. (웃음)

Q. 작업을 하면서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 

A. 크게 어려운 점은 없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찍을 때 마다 이미지에 책임을 지는 것에 관해서 생각하곤 한다. 현실을 기록하는 것이기에 윤리성 문제에 마주하기도하는데, 이 모든 것에 있어서 책임감을 가져야하는 부분이 여전히 고민하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임감은 다큐멘터리 작업에 있어서 필수라고 생각한다.

Q. 오늘날의 다큐멘터리는 어떠한 위치와 모습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A. 영화 역사상 다큐멘터리는 굉장히 작은 영역이었지만, 디지털 기술의 발전으로 끊임없이 확장하고 있다. 지난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조금은 불행했다. 정치적 선전에 이용되어왔고, 저널리즘과 혼돈되어왔다. 사람들은 늘 다큐멘터리를 저널리즘이라고 생각해왔다. 여전히 다큐멘터리는 저널리즘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나는 저널리즘과 다큐멘터리는 굉장히 다르다고 생각한다. 도큐멘터리는 그 자체로 재밌는 미디어이고, 예술 장르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은 어떠한가? 

A. 베를린에 오기 전에 <두 번째 삶(second life)>이라는 제목(가제)의 작업 촬영을 미시건에서 모두마쳤다. 17살에 감옥에 들어가서 50년을 보낸 인물의 모습을 담았다. 아직 후반 작업이 많이 남아있는데, 뉴욕에 돌아가서 마무리 작업을 계속 진행할 생각이다.


 *해당 인터뷰는 인디포스트에 기고한 [현장취재] 제 68회 베를린 국제 영화제에 가다 3 에 포함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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