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베를린에서/숨바꼭질을] -02. Mobile Kino

<들어가며>

[하다/베를린에서/숨바꼭질을]은 베를린의 공간을 탐색하고 파헤쳐낸 연속적 결과물이다. 베를린에서 약 8년을 거주한 필자는 때로는 학업에, 때로는 일에 치여서 소위 ‘힙’하다는 이 도시를 여전히 잘 모른다. 사실 새로운 것에 워낙 조심스러운 성격이 이러한 사태를 발생시킨 근본적인 이유겠지만 너무 재미없게 지냈음에는 틀림이 없다.

 오늘날 베를린은 전 세계 곳곳의 문화와 예술이 중첩되면서 다양성 그 이상의 변주를 생산하고 소멸시키고 있다. 그만큼 새로움의 환기 속도가 빠르다. 필자는 방구석에 앉아서 타자를 두드리는 소극적인 행위를 탈피하여,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일종의 모험을 떠나고자 한다. 그래 봤자 베를린 안이겠지만, 필자에게는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독자에게는 위대한 한 걸음이 되리라.


스크리닝 모습 (사진 제공: Mobile Kino)

두 번째로 소개할 공간은 <Mobile Kino> 다. 세계 3대 영화제 중 하나인 베를린 국제 영화제를 필두로 유럽 최초의 대규모 영화 제작소 바벨스베르크 스튜디오(Studio Babelsberg) 그리고 영화 아카데미 콘라드 볼프 영화 학교(Filmuniversit’t Babelsberg Konard Wolf)가 있는 베를린은 독일 영화와 영화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멀티플렉스 상영관의 잠식을 넘어서 자본과 디지털 기술에 힘입은 새로운 콘텐츠 플랫폼이 오늘날의 영화관 패러다임을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베를린의 소규모 독립 영화관도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를 맞이했다. 그럼에도 이들이 여전히 건재할 수 있는 건, 바쁜 일상 속에서 시간과 돈을 들여가며 굳이 영화관을 찾는 관객과 독립 영화관으로서의 특색을 잘 살리기 위한 노력 덕분이지 않을까.

독립 영화관은 대게 그 이름에서 공간의 정체성과 성격이 잘 드러나곤 한다. 그런 점에서 „Mobile Kino”라는 이름은 마치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주인공 하울이 사는 움직이는 집(혹은 성)처럼 영화관이 살아 움직이며, 곳곳을 떠도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내게끔 한다.

베를린의 숨겨진 공간을 샅샅이 찾아서 소개하겠다는 장대한 다짐을 서문에 밝히고서, 공간의 정의에 관해서 나름의 고민이 있었다. 그중 하나는 공간이 꼭 물리적으로 어느 한 지점에 고정되어야 하는 것인가라는 의문이었는데, 꼭 그럴 필요는 없다는 답을 내렸다.

Mobile Kino 스티커 (사진: 이정훈)

이번에 소개할 공간은 물리적 거점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들은 Berlin´s Traveling Pop-Up Cinema를 표방하며 이동 가능한 영화관으로서 공간의 물리적 한계를 뛰어넘는다. 그 과정에서 분출하는 생명력과 생동감은 그들이 가진 장점이자 여타 독립 영화관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징이다.

하지만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는 콘셉트를 가진 공간이라고 할지라도 그 본체는 존재할 터.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 필자는 <Mobile Kino>에 연락하여, 그들이 일하는 곳을 직접 방문했다.

찾아간 곳이 이들의 사무실이라는 건 미리 알고 있었다. 특별히 기대한 것은 없었지만, 영화와 관련한 일을 하는 곳이라면 응당 머릿속에 전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기 마련이다. 예를 들어 벽에 영화 포스터가 한가득 붙어있거나, 배우나 감독의 사진이 붙어있거나. 그 누가 보더라도 이곳은 영화와 관계된 곳이라는 걸 단번에 파악할 수 있는 풍경이 필자를 반길 줄 알았다. 그러나 이들이 일하는 곳은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그냥 평범한 스타트업 사무실이었다.

바쁜 와중에도 흔쾌히 인터뷰에 응해준 <Moblie Kino>의 디렉터Fernando Huerta와 오퍼레이터 매니저 Karl Barakat가 함께한 자리에서 그간 궁금했던 점을 쏟아내듯이 물어봤다. (아래 인터뷰)

그리세뮬레(Griessmühle) 입구 모습 (사진: 이정훈)

약 두 시간의 인터뷰가 끝난 뒤에 이들은 다음 날에 그리세뮬레(Griessmühle)에서 진행하는 Mobiel Kino의 스크리닝 프로그램에 고맙게도 필자를 초대해줬다.

저녁 8시부터 시작하는 스크리닝에 겨우 맞춰서 도착했다. S-Bahn 역 Sonnenallee에서 걸어서 채 5분도 안 걸리는 거리였다. 입구까지 가는 길은 불빛이 하나도 없어서 굉장히 어두웠고, 으슥했다. 살짝 무서웠지만 정말로 공간을 찾아다니는 모험을 하는 것 같아서 금방 신이 났다.

입구에서 가장 눈에 띈 건 역시나 팝콘 기계였다. (인터뷰 참고) 서둘러 손등에 Mobile Kino라고 적힌 도장을 찍고 영화관에 들어갔다. 당일 스크리닝 프로그램은 원래 모든 좌석이 매진이었지만, 운이 좋게도 맨 앞에 마련된 여분의 자리에서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영화관에서 빠질 수 없는 팝콘 (사진: 이정훈)

프랑스 애니메이션 영화를 봤는데, 상상력을 자극하는 소재인 만큼 흡입력이 굉장했다. 하마터면 지금 현장 취재 중이라는 걸 잊어버릴 뻔했다. 사실 거의 잊어버리고, 그냥 즐겼다고 말하는 편이 맞을지도 모른다. (조금 변명하자면, 직접 경험한 현장의 느낌을 전달하는 것이 취재의 목적이니까 나부터가 즐기고 그 분위기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행히 그 와중에도 직업 정신(?)을 발휘하여 공간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눈 앞에 펼쳐진 풍경을 천천히 살펴봤다. 기존 클럽 공간인 그리세뮬레(Griessmühle)의 성격과 사각의 스크린 안에서 시각물과 서사가 흐르는 영화관(Kino)의 성격이 조화롭게 잘 섞인 것 같았다. 영화를 즐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맥주나 와인과 같은 주류를 함께 곁들일 수 있었고, 심지어 흡연까지 가능할 정도로 정말 자유로운 분위기였다. 평일 저녁 이곳에 들른 관객은 단순히 영화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앞에 놓인 시간과 공간을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자유롭게 만끽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 속에서 함께 즐기면서 이동하는 곳마다 달라지는 영화의 느낌과 영화관의 분위기가 <Mobile Kino>의 가장 큰 매력이자 관객들이 이들을 찾는 이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가 지니는 기존의 서사와 분위기가 공간으로 인해서 변주적으로 다가오는 경험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오퍼레이터 매니저 Karl Barakat(왼)와렉터 Fernando Huerta(오) (사진: 이정훈)

(아래 인터뷰) 

Q. 영화를 다루는 곳이라고해서 포스터가 가득한 공간을 상상했다. 그런데 평범하고 아늑한 스타트업 사무실 같다. 우선 <Mobile Kino>에 관해서 짧게 소개해달라. 

A. 간단히 말하자면 여행하듯이 돌아다니는 극장이다. 우리는 베를린의 각기 다른 장소에 우리는 영화관을 만든다. 보통의 시네마 모습인 스크린과 좌석으로 구성된 방을 탈피해서, 기존의 공간과 영화관이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다양한 모습을 선보인다. 극장에 마법을 부린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웃음)

Q. 극장에 마법을 부린다는 말이 꽤 낭만적이다. (웃음) <Mobile Kino>의 처음 시작이 궁금하다. 어떤 계기로 지금까지 오게 된 건가?  

A. <Mobile Kino>의 시작은 꽤 오래전이다. 지금의 모습이 만들어지기 이전에 사업 파트너가 당시에 바(Bar), 클럽(Club) 혹은 공원과 같이 다양한 곳에서 스크리닝 행사를 했던 것이 원래의 모습이었다. 일종의 영화 모임과 같은 형태였는데, 순전히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조촐하게 즐길 수 있는 분위기였다. 나 역시 스크리닝에 자주 갔던 사람 중의 한 명이다. 변형된 형태의 극장과 스크리닝 행사가 잠재력을 가졌다고 생각했고, 이걸 단순히 모임이 아닌 사업으로 확장해보자고 제안했다. 그렇게 이동하는 극장을 표방한 <Mobile Kino>와 스크리닝 행사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함께하는 팀원도 거의 없었다. 그러나 오퍼레이터 매니저인 Karl처럼 당시에 나와 마찬가지로 스크리닝 행사에 자주 오곤 했던 친구 중 몇 명은 지금까지 함께하고 있다.

Q. 원래부터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건가? 

A. 당연히 영화를 좋아하고 그만큼 관심이 많다. 그리고 영화 산업 현장 속에서 10년 동안 계속 일을 해왔다. 전에는 영국 런던의 한 영화관에서 전략 매니저로 관객 유치에 관한 일을 했고, 이후에 독립 영화관에서도 일했다. 멀티플렉스보다는 소규모의 영화관을 더 좋아했다. 하지만 매니저로 일하면서 반복되는 많은 업무에 지쳐버렸다. Mobile Kino에서 하는 스크리닝 행사처럼 영화관이라는 개념 안에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걸 하고 싶었다.

Q. 앞서 베를린의 여러 공간을 찾아다니며 영화관으로 만든다고 말했는데, 최근에는 어느 공간에 마법을 부렸나? 

A. 지금은 그리세뮬레(Griessemühle)라는 클럽에서 고정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이다. 그리고 동시에 베를린의 유명한 소규모 영화관인 바빌론(Babylon) 에서 프리뷰(Preview)를 하고 있다. 지금은 겨울이라서 주로 실내 공간 위주이지만, 여름에는 공원이나 비어가든(Biergarten)과 같이 넓은 곳에서 스크리닝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스크리닝 모습 (사진 제공: Mobile Kino)

Q. 어떤 장비를 이용해서 이동하는 영화관을 만드는지도 궁금하다. 그리고 어떻게 운반하는지도. 

A. 크게 들고 가는 건 없다. 프로젝터, 스크린, 음향장비, 관객들이 앉을 의자, 그리고 팝콘. 팝콘이 제일 중요하다. 영화관이니까. (웃음) 그리고 운반은 원래는 Mobile Kino라고 적힌 화물 자전거를 이용하는데, 보기에는 로맨틱하지만 사실 그보다 차를 이용해서 옮기는 게 더 효율적이다.

Q. 베를린 안에서만 진행하는 건가? 

A. 주로 베를린에서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지, 이곳만을 고정적인 무대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함부르크, 슈투트가르트, 뮌헨, 라이프치히, 쾰른 등 독일 전역을 돌아다니며 프로모션 투어(Tour)를 했고, 심지어 지난번에는 멕시코에서 페스티벌을 진행했다.

Q. 조금 진부한 질문이다. 기존에 존재하는 공간에서 영화관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드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궁금하다.  

A.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떠나서 관객이 공간에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것에 의미가 있다.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는 것과 숲이나 호숫가에서 보는 것은 큰 차이가 있을뿐더러, 공간이 지닌 기존의 사용 목적 위에 시네마가 올려지면서 새롭게 만들어진 성격과 정체성은 관객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고 생각한다.

Q.  그렇다면 공간과 영화 프로그램을 선정할 때 어떤 기준이 있나? 아니면 고려하는 점이 있다면? 

A.  우선적으로 장소와 영화의 연관성을 많이 고려한다. 예를 들어, 퀴어(Queer) 주제를 다루는 영화를 퀴어 전용 클럽에서 보여주거나 우주와 관련한 영화를 별과 달이 쏟아지는 숲속에서 보여주는 등 공간과 영화가 연결되는 지점 혹은 공통분모가 중요하다. 그리고 계절이나 환경에 영향을 받기도 한다. 겨울에는 포근하고 향수를 자극하는 영화를 선별하여 실내 공간에서 보여주고, 여름에는 활발하고 신나는 영화를 야외에서 보여준다. 이렇듯 공간에서의 다양하고 새로운 경험을 만들어내기 위해서 회의를 자주 한다. 사실 방금도 3월에 선보일 영화 프로그램 구성을 의논하던 중이었다.

Q. 영화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일반 극장에서는 보기 힘든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  

A.  특별히 소규모 제작의 독립 영화나 예술 영화만을 다루는 건 아니다. 그냥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잡지를 통해서 접할 수 있는 트레일러 영상과 관련 글을 살펴보고서 마음에 드는 걸 회의 때 이야기한다. 그렇게 언급된 영화는 상황과 환경을 고려해서 스크리닝 가능 여부를 판단한다. 혹은 문득 그리운 고전 영화가 있다면, 이를 모아서 클래식 영화 프로그램을 기획하기도 한다. 실제로 프로그램 기획 중이다. (웃음)

Berlin Film Nights의 포스터 (사진 출처: Berlin Film Nights 페이스북 페이지)

Q. 단순히 영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 이상으로 영화제(?)를 기획하기도 하던데? 

A. 자체적으로 기획하기도 하지만, 주로 다른 영화관이나 협력사와 함께 진행한다. 베를린을 다룬 장편, 단편, TV 시리즈를 선보이는 <Berlin Film Night>, 멕시코 비경쟁 영화제 <Mexico Scope> 그리고 오는 3월에 진행하는 <Berlin Feminist Film Week 2018>를 대표적으로 꼽을 수 있다.

Q. 영화를 스크리닝하는 과정은 어떻게 되나? 저작권 문제는 없나?  

A. 감독이나 제작자에게 직접 연락하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주로 배급사와의 계약 관계 아래에 진행된다. 문제는 배급하지 않는 영화의 경우 저작권 소유자를 찾아서 허가를 받거나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데, 소유자가 불확실한 경우가 많아서 상영하지 못한 작품이 꽤 많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작권 소유자를 찾는다고 하더라도 그 비용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이다. 어쨌거나 상업성을 가진 극장이기 때문에 수지타산 맞추는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Q. 일반 영화관과 Mobile Kino는 어떤 차이점이 있나?  

A. 하나의 영화를 몇 달 동안 상영하는 일반적인 영화관과 다르게 우리는 한 장소에서 한 영화의 스크리닝을 한 날에 한 번 가지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다. 이는 사업의 전략적인 측면에서도 큰 차이점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이날의 이 시간에만 볼 수 있다는 사실이 만드는 희귀성과 특별함이 있는 것 같다. 더욱이 최신 영화 위주로 상영하는 것이 아닌 행사와 프로그램을 기획하기 때문에 현재 다른 극장에서는 볼 수 없는 영화를 <Mobile Kino>에서는 볼 수 있다. 또한, 단순히 영화만을 보고서 끝나는 자리가 아닌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영화에 관해서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회 교류의 장으로서도 기능한다.

2017 Summer Camp 모습 (사진: Mobile Kino 페이스북 페이지)

Q. 앞으로의 계획은?  

A. 가장 가까운 계획으로는 다가올 여름 시즌의 <Summer Camp>를 잘 준비해서 치르는 것이다. 그리고 베를린이 아닌 다른 도시나 국가에서도 고정적인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찾는 중이다.


필자 주 및 추신

필자 주 1) Mobile Kino를 소개해준 윤정 씨께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추신 1) 위 글은 <인디 포스트>에 기고한 원고입니다. 텍스트 복사 및 수정을 엄격하게 금지합니다.

추신 2) 편집이 적용된 기고 글은 해당 링크에서 살펴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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