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훈 (B의 유령)

미루고 미뤘던 글을 쓴다. 작년 말부터 공연 예술에 부지런히 관심을 쏟았다. 덕분에 단기간에 수많은 공연을 볼 수 있었고, 더 늦기 전에 이를 텍스트로 기록하며 소화하고자 한다.

작년 7월 베를린의 폴크스뷰네(Volksbühne)에 전 테이트 모던(Tate Modern) 큐레이터였던 크리스 데르콘(Chris Dercon)이 감독으로 부임했다. 미술계에 몸을 담고 유명 대형 기관의 큐레이터를 거쳐온 그가 새롭게 제안한 극장의 청사진은 지금까지도 그치지 않는 논쟁거리다.

1914년 설립 이후 분단과 통일의 역사를 지나오며 ‘노동’과 ‘진보’를 상징한 민중 극장은 그가 제시한 ‘자유 극장’이라는 시스템 속에서 그간 접하기 힘들었던 해외의 유명 작업을 관객에게 선보였다. 그 대표작 중 하나가 프랑스 출신의 안무가 제롬 벨(Jérôme Bel)의 <쇼는 계속 되어야한다(The Show Must Go On>이다. 그의 작업은 2001년 초연 이후 17년 간 전 세계의 무대에서 오르내렸다. 독일에서는 2012년 루어 트리엔날레 (Ruhrtriennale), 카셀 도큐멘타 13 (dOCUMENTA 13), 테아터트레펜 2013 (Theatertreffen 2013)에 초청되어 <모두를 위한 춤(Disabled Theater)>을 선보였다. 그의 대표작인 <쇼는 계속 되어야한다(The Show Must Go On)>는 독일 내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것일 뿐만이 아니라, 그 무대가 구동독의 대표 극장인 폴크스뷰네(Volksbühne)라는 사실은 공연을 봐야 하는 이유에 확신을 가했다.

Die Volksbuehne am Rosa Luxemburg Platz bei Nacht zu Beginn der neuen Intendanz von Chris Dercon. November 2017.
폴크스뷰네(Volksbühne) 전경 (사진: David Baltzer)

무대는 텅 비어있다. 무대 단상 아래에는 작은 책상과 의자가 놓여있다. 그 위에는 음향 기계가 있고, 이를 만지는 장발의 DJ가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사람들의 웅성거림이 암전과 함께 잦아들었고, 이내 사진과 비디오 촬영 금지라는 안내가 흘러나온다. 이는 극의 시작을 알리는 시그널(Signal)이다. 동시에 관객 앞에 놓인 무대를 영화나 TV 프로그램이 상영되는 평면 스크린으로 변형시킨다. 17 곡의 팝송(Pop Song)을 주축으로 한 공연은 화면 위에 17개의 뮤직비디오를 연달아 틀어 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Die Volksbuehne Berlin zeigt Jerome Bels "The show must go on" mit Angestellten und Mitarbeitern der Volksbuehne. Premiere: 20. Dezember 2017.
제롬 벨(Jérôme Bel)의 <The Show Must Go On> 공연 모습 (사진: David Baltzer)

이 환영이 채 가시기 전에 DJ는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의 수록곡인 <Tonight>을 틀며 90분간 진행할 오늘 밤의 서막을 본격적으로 연다. 그러나 무대는 여전히 어둡다. 언제 시작하냐는 관객의 불평을 듣기라도 했는지 DJ는 새로운 노래 <Let the Sunshine In>을 튼다. 무대 위에 한 줄기 햇빛처럼 조명이 떨어진다. 그리고 서서히 무대를 밝힌다. 이처럼 노래 제목은 극의 플레이를 위한 무형의 시그널로 전환되어 무대 위에 시각적 결과물로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후 비틀즈(Beatles)의 <Come Together>로 노래가 바뀌면서 총 22명의 인물, 즉 퍼포머(Performer)가 등장한다. 나이, 국적, 문화 배경의 범주가 굉장히 넓어 보인다. 실제로 이들은 전문적으로 훈련된 무용수가 아니다. 덕분에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의 <Let´s Dance>의 명령에 반응하는 그들의 비정형적 신체 움직임은 어딘지 모르게 익숙했고, 편안하며 또한 유쾌했다.

<I Like To Move It>을 만나자 그 폭은 더욱 넓어졌다. 흔히 막춤(?)이라고 부르는 아무렇게나 움직이기는 자기소개를 하는 것 같기도 했고, 무대에 가만히 앉아서 그 풍경을 보는 관객에게 ‘너도 이렇게 움직일 수 있어!’라고 대화를 거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러한 시도는 무대와 객석으로 나뉘어 있는 극장의 이분법적 구조에 비평적 의문을 던지며, 관객과 무대 위의 인물 사이에 놓인 제4의 벽(The Fourth Wall)을 걷어낸다.

Die Volksbuehne Berlin zeigt Jerome Bels "The show must go on" mit Angestellten und Mitarbeitern der Volksbuehne. Premiere: 20. Dezember 2017.
제롬 벨(Jérôme Bel)의 <The Show Must Go On> 공연 모습 (사진: David Baltzer)

이어서 <Ballerina Girl>의 잔잔한 선율이 극장 안에 흐른다. 무대 위에는 여성만 남아있다. 이들은 극장에 울리는 ‘발레리나 소녀가 되어라’라는 시그널을 받고는 비전형적인(untypisch) 신체로 전형적이고, 고전적인 무용의 움직임과 충돌한다. 이로부터 빚어진 유머(Humor)는 구시대와 동시대의 간극을 세련되게 인지할 수 있는 장치로 기능한다.

무대 위의 발레리나가 퇴장하는 것과 동시에 DJ는 티나 터너(Tina Turner)의 <Private Dancer>를 재생한다. 그리고 직접 무대에 올라간다. 암전. 그리고 조명 스포트라이트. 관객 개개인을 위해서 춤을 추는 댄서인 마냥 혼자서 불규칙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조명 아래에서 어설프고 혹은 부끄러워하는 그 모습에 관객은 더욱 열렬한 환호를 보낸다. 음악 플레이를 담당하는 위치에서 벗어나 독무대를 가지면서 자신이 23번째 퍼포머라는 사실을 알린다.

다시금 무대 위로 22명이 올라온다. <Macarena>와 <Into My Arms> 두 곡과 함께 무대 위에서 비선형적 동선을 만든다. 이는 영화 타이타닉의 OST로 유명한 <My Hearts Will Go On>의 재생 안에서 나름의 시각적 결과물을 생산한다. 앞선 두 곡처럼 그들은 정해진 동선 없이 떠돌아다닌다. 이내 두 명씩 짝을 이루어 타이타닉의 명장면인 갑판 신(Scene)을 재현한다. 서로의 무게를 견디며 가까스로 장면을 재현하거나 혹은 아주 자연스럽게 재현하는 등의 다양한 타이타닉(Titanic)의 모습이 펼쳐진다.

Die Volksbuehne Berlin zeigt Jerome Bels "The show must go on" mit Angestellten und Mitarbeitern der Volksbuehne. Premiere: 20. Dezember 2017.
제롬 벨(Jérôme Bel)의 <The Show Must Go On> 공연 모습 (사진: David Baltzer)

비틀즈의 <Yellow Submarine>과 함께 무대의 중앙이 천천히 내려간다. 무대 위 퍼포머들 역시 관객의 시야로부터 아래로 사라진다. 그리고 노란색 불빛이 위로 새어 나온다. ‘’We all live in a yellow submarine’’ 이라는 노래 가사가 아래로부터 들린다. 사라진 퍼포머는 무대 아래의 노란 잠수함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의 외침은 폭소를 유발한다. 노랗게 물들어 있던 극장은 <La Vie en Rose>의 장밋빛으로 물들며, 고풍스러운 장식으로 치장한 극장 내부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붉은빛은 점차 수그러들고, 존 레논(John Lennon)의 명곡 <Imagine>이 들리며 극장은 어둠에 잠긴다.  종교와 국적의 장벽이 허물어진 평화로운 세상을 상상해봐 라는 노래가 갈등과 분단의 흔적이 고스란히 새겨진 폭스뷰네(Volksbühne)에서 울려 퍼지는 모습은 낯선 경험을 선사한다. 그리고 노래 제목 혹은 가사로부터 전송되는 시그널은 무대에만 그치지 않고, 관객에게 함께 상상할 것을 유도한다.

무대는 여전히 어둡다. DJ가 새로운 CD를 넣자, 사이먼 앤 가펑클(Simon & Garfunkel)의 <The Sound of Silence> 선율이 극장을 가득 채운다. 가사에서 ‘Silence’라는 말이 나올 때마다 DJ가 볼륨을 줄인다. 시그널(Signal)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수행하며, 명령으로 일컬어지는 시그널이 무작위적인 성격을 지녔다는 것을 암시한다.

노래가 잦아들고, 무대가 밝아진다. 더 폴리스(The Police)의 <Every Breath You Take>가 들린다. 무대 위로 퍼포머가 등장하며 가로 한 줄로 한 명씩 서서 관객을 마주한다. 마침 ‘Every breath you take, I’ll be watching you’라는 가사가 들리며, 관객과 서로를 바라보며 대치 상태에 머무른다. 이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존재를 가능케 하는 중요한 두 요소를 부각함과 동시에 상대를 인식하여 그 존재감을 더욱 선명하게 만든다. 여기서 시그널은 ‘인식/인지(Wahrnehmung)’라는 수행적 행위를 유발하며, 수동적 관객을 객석의 그림자로부터 해방한다. 노래가 끝에 다다르자 다시금 한 명씩 무대 뒤 어둠으로 사라진다.

Die Volksbuehne Berlin zeigt Jerome Bels "The show must go on" mit Angestellten und Mitarbeitern der Volksbuehne. Premiere: 20. Dezember 2017.
제롬 벨(Jérôme Bel)의 <The Show Must Go On> 공연 모습 (사진: David Baltzer)
Die Volksbuehne Berlin zeigt Jerome Bels "The show must go on" mit Angestellten und Mitarbeitern der Volksbuehne. Premiere: 20. Dezember 2017.
제롬 벨(Jérôme Bel)의 <The Show Must Go On> 공연 모습 (사진: David Baltzer)

마지막 한 명을 남겨두고, 음악은 멈춘다. 들어갔던 이들은 귀에 이어폰을 쓰고, 손에 카세트를 들고 나타난다. DJ의 손짓에 맞춰서 음악 재생 버튼을 누르고, 각자 듣고 있는 노래의 특정 단어나 문장을 큰 소리로 읊기 시작한다. 이렇게 시작된 아무말 대잔치(?)는 그 형태로서 처음에는 웃음을 자아내지만, 이내 묘하게 엮어지는 서사(Narrative)는 이전까지 보여줬던 신체 움직임과는 또 다른 생동감을 창조한다. 또한, 큰 틀 안에서 머무르던 서사의 파편을 무대 내부 깊숙이 끌어 들여오며 새로운 관점의 구조를 시사한다.

다음 음악을 준비하려는 찰나, 퍼포머 중 한 명이 걸어 나와 들고 온 CD 한 장을 DJ에게 건넨다.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건네는 행위는 그동안 선형적이던 극의 구조와 관계에 균열을 가한다. 안무가로 상징되는 DJ와 무대 위 인물 사이의 시그널 ‘전달 – 수행’이라는 수직적 관계는 전복된다. 그리고 극장 내부의 비가시적 권력 구조는 민주적이고 평등한 관계를 지향한다.

이어서 <Killing Me Softly With His Song>이 흐른다. 천천히 숨통이 조여오는 듯 퍼포머는 몸을 점점 아래로 흘러내리며, 종전에는 죽은 듯한 상태로 눕는다. 극장 속의 죽음이라는 요소는 생소하다. 그러나 죽음은 무대와 객석 위에 놓인 인간(Human Being)이라는 자연 존재를 다시금 확인시킨다. 또한, 극과 극장에서 그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강조한다. 죽음은 또 다른 시작이며, 결코 끝이 될 수 없다. 대장정의 막을 알리는 퀸(Queen)의 <The Show Must Go On>과 함께 죽음에 이르던 퍼포머가 하나 둘 일어선다. 쏟아지는 박수갈채 속에서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라는 무형의 시그널을 객석으로 전달한다. 어둠 속으로 서서히 사라지는 무대는 기약 있는 만남을 선언한다. 그리고 미래의 어느 지점으로 이동하여 쇼가 계속되어야 한다는 거대한 명령이자 약속을 이행한다.

Die Volksbuehne Berlin zeigt Jerome Bels "The show must go on" mit Angestellten und Mitarbeitern der Volksbuehne. Premiere: 20. Dezember 2017.
제롬 벨(Jérôme Bel)의 <The Show Must Go On> 공연 모습 (사진: David Baltzer)

다양한 형상의 시그널이 존재하고, 얽히고설켜 만들어진 새로운 서사 구조는 포스트 모던(Postmodern)을 본격적으로 지향한다. 어떤 시대적 혹은 이를 지향한다는 말은 흔히 작업을 박제할 수 있는 구속력을 지닌다. 옛것으로, 구시대적 산물로 정의되어 예상하지 못했던 지점을 도착점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제롬 벨의 <The Show Must Go On>은 이러한 법칙을 깨버린다. 동시대(Contemporary)로 지칭되는 오늘까지 이 쇼가 계속될 수 있었던 것은 시그널을 수행하는 구조를 창조한 안무가 본인의 전략이 통한 면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관객을 비롯한 극장의 다양한 요소를 빠짐없이 필요로 하는 공동체 구조의 작업이라는 사실이 2001년 초연부터 17년이 지난 지금까지 쇼를 이어 올 수 있는, 그리고 그 너머까지 쇼를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

 

*본 원고는 베를린 기반의 시각예술 동인 DDDD에 기고했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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