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 출신의 감독 아핏차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ul)의 이름은 낯설다. 그의 작품 또한 그 이름만큼 낯선 서사 구조와 영상으로 가득하다. <엉클 분미(Uncle Boonmee Who Can Recall His Past Lives)>(2010)로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받으면서 그의 이름과 작품은 대중에게 한 발짝 더 다가갔지만, 여전히 그의 작업은 기존 영화 문법의 시각에서 적응하기 쉽지 않다. 더욱이 그는 시네마와 미디어 아트를 오가며 활동하기에 작품 세계와 그 해석의 층위는 사각 평면의 스크린을 훌쩍 뛰어넘는다. 자신만의 작품 세계를 엮어가는 감독은 최근 개막한 광주 비엔날레에 작가로 참여하며 예술 활동의 범위를 더욱 확장하고 있다. 시각 예술, 공연 예술 그리고 영화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행보는 그의 영화 속 메타포인 정글과 같이 한 치 앞을 알 수 없다. 감독이 창조한 낯선 정글 속에는 무엇이 있을지 지금 바로 알아보자.

 

실제와 허구의 뒤섞임

그의 첫 장편 데뷔작인 <정오의 낯선 물체(Mysterious Object At Noon)>(2000)는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의 공간을 부유한다.  영화는 생선을 파는 한 여성이 카메라에 등장하며 시작한다.  자신의 기구하고 불우한 어린 시절을 기억 속에서 꺼내며 관객의 감정을 동화시킨다. 대뜸 감독은 화면 너머에서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다른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요청한다. 여자는 자신이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준다. 감독은 이를 시작점으로 태국의 북부에서 남부로 내려오며 만난 여러 사람들에게 앞선 이야기를 이어 달라고 한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설화와 같이 이들은 실재와 허구가 뒤섞인 그 이야기를 새롭게 계속해서 이어간다. 더불어 감독은 자신이 만난 사람들의 모습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카메라에 담아내는데, 스크린에는 그 모습과 그들이 던지는 이야기가 뒤섞이며 펼쳐진다. 영화는 기존에 지배적이던 전통적 장르와 서사 구조를 거부한다. 그리고 스스로 명확하지 않은 영역에서 떠돌아다니기를 선언한다.

 

전통적 영화 문법에 대한 반기

감독은 기존의 영화 문법으로 자신의 영화를 끼워 맞추지 않는다. 두 번째 장편이자 칸 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의 출품작인 <친애하는 당신(Blissfully Yours)>(2001)에서 감독은 획일적인 영화 구조에 보다 직접적인 반기를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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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5분 러닝 타임의 영화는 중반에 느닷없이 제목을 띄운다. 아무런 정보 없이 눈앞에 놓인 스크린을 따라온 관객에게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영화라는 사실을 인지시킨다. 감독은 낯선 구조를 통한 시선의 해방과 새로운 영화 형식의 가능성을 실험적으로 도모한다. 영화는 태국 국경의 한 시골 마을에서 불법으로 체류하는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 그리고 주인공을 돕는 한 중년 여성의 사이에서 오가는 관계와 감정의 풍경을 담는다. 국경에서 불법 체류 중인 버마인이라는 인물의 배경은 국가 간의 정치 및 사회적 문제에 관한 우회적 접근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서사의 흐름에서는 이와 맞닿은 지점을 발견하기 쉽지 않다. 어쩌면 이 또한 영화의 역할과 뻔한 쓰임새를 비판하는 감독의 목소리일 수도.

 

무한과 초현실의 공간, 정글

그의 영화 혹은 작품에 있어서 ‘정글’은 모든 서사가 담기는 배경이자 인물의 역사와 주변 관계를 이어주는 중요한 링크이다. 2010년 칸 영화제 황금 종려상을 수여한 <엉클 분미>는 감독의 정글 미학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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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작품들이 구조적인 해체와 새로운 형식을 중심으로 인간과 자연의 이야기를 담아냈다면, <엉클 분미>는 영화의 실험적 형태보다는 서사의 내용에 초점을 맞춘다. 인물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인간의 현세와 내세 그리고 자연 존재의 초월성을 다룬다. 더불어 감독 특유의 불친절한 영화 구조 위에 놓이며 동양의 사상적 정취를 만들어내는데, 스크린에 담긴 영화적 요소들은 정글이라는 매체를 통해서 서로 관계한다. 이처럼 정글은 심미적 사용뿐만이 아니라 하나의 연출 장치로 기능하며 서사의 간극을 좁히며 낯선 전개를 최소화한다. 감독의 여러 작품 중에서 <엉클 분미>가 그나마 대중적이라는 평가를 듣는 것도 감독의 정글 미장센이 잘 작동했기 때문이 아닐까.

 

평면으로부터의 해방 그리고 실험의 확장

아핏차퐁은 감독뿐만이 아니라 작가로서 시각 및 공연 예술 분야에서도 활동 중이다. 지난 2015년 국립 아시아 문화 전당의 예술극장에 올렸던  <열병의 방>은 그가 단지 스크린에만 갇혀 있지 않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열병의 방(Fever Room)>은 외적 형태는 공연 예술에 가까우나, 내부의 작업물은 비디오 아트, 시네마 그리고 퍼포먼스가 결합된 다원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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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영화관이 아닌 공연장에서 객석과 무대의 기능을 뒤바꿈으로써 관객에게 새로운 시공간을 제공한다. 무대 위에서 객석을 바라보며 앉은 관객에게 작가는 2~4개의 분할된 스크린을 제공하며 자연과 문명의 다른 풍경을 병렬의 구조 안에서 보여준다. 이후 무대는 어둠에 잠기고, 스크린을 향하던 프로젝터는 빛을 산란하며 현실과 가상의 사이의 혼란이라는 입체적 경험을 제공한다. 더불어 그간 평면의 스크린을 통해서 새로운 구조를 실험하던 감독은 입체의 시공간 속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도모한다.

영화와 시각 예술, 그리고 공연 예술을 자유로이 오가는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이 자신이 만든 정글의 세계에서 다음에 무엇을 들고 올지 궁금하다.

 


해당 글은 인디포스트에 기고한 미교열 원고의 일부입니다. 기고 전문은 인디포스트(링크)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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